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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Oct 31. 2024

나 또 퇴사했다.

퉤,사

 10년 동안 세 번의 퇴사를 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판단을 보류해 본다. 


 간절하게 원했던 대기업의 꿈이 날아갔다. 대기업에 가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도 입학했는데. 2023년에 졸업해서 그 해 상반기에 취업하려고 하니, 졸업하는데 힘을 다 써버려서 상반기를 날렸다.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하반기에 취업을 해보자 했더니 다 떨어졌다.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알 길이 없어 전공자 친구들에게 포트폴리오와 자소서를 풀었다. 피드백을 받고 다시 수정 작업을 했다. 넣으려고 하니 상반기까지 시간이 남았고 대기업이고 나발이고 그 해 안에 취업을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도 컸다. 돈 많이 버는 회사는 날아갔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며 설립한 지 3년쯤 된 회사에 겁도 없이 들어갔다. 



 들어간 지 2달 만에 온갖 모욕과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무기력을 겪고 있을 때, 나의 불안에 대한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쏟아졌다. 같이 일하는 대리였는데, 나랑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잘 합치면 멋진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데 도저히 협조가 안 되는 것이었다. 고집이 황소고집이라고 매일 같이 욕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 또한 a에다가 b를 합칠지 b에다 a를 합칠지에 대한 사소한 것으로 고집을 부렸던 게 생각났다.


 입사 3개월 차, 대표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은근 나를 올려치는 말들도 내가 이 업계에 재능이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대표는 안목을 과시하며 본인이 뽑은 나 또한 어떤 잠재적 능력이 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는 말들을 했었다. 사실은 나를 올려치는 말이 아닌 대리를 내려치는 말이었고, 나의 잠재력이 아닌 본인의 과장이었을 뿐임을 퇴사할 때쯤 알았다.


 이미 작년 내내 혼자 골방에 앉아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면서 속이 곪을 대로 곪았었다. 친구를 만나도 재미없고, 회사 잘만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겉은 웃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이유 모를 분노와 자괴감이 들끓었다. 어느 순간 친구들의 응원도 다 예의로 하는 말 같았고, 취업 직전에는 그냥 아무 데나 가서 죽은 듯이 일하자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다.


그렇게 나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이 난 채 들어간 곳에서 대표는 나를 찍어 누르기 바빴다. 입사 직후부터 시작된 스트레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쌓였고, 입사 4개월 차부터 결국 불면증을 앓다가 만성위염을 겸비한 마음고생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마음고생 다이어트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일주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또 야근을 했다. 야근을 할 때에는 종종 토를 했고, 벨트 없이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없었다. 나는 저체중이 되었다. 나는 대표 앞에서는 늘 염소 목소리가 나왔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얼굴이 상기됐다.


 입사 7개월 차, 출근을 했는데 대표가 있었다. 원래는 늘 내가 가장 먼저 출근을 했었다. 머리가 핑 돌면서 황급히 화장실로 가서 오바이트를 쏟았다.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이 망가졌다. 일주일에 두 번씩 미팅을 잡고서 예민함을 오직 나와 대리에게만 뿜는 대표에게 참았던 분노가 터지기 시작했다. 입사 8개월 차, 못 참고 미팅을 나가는 대표의 뒤통수에 말했다. 면담하려고요, 퇴사 면담이요. 대리는 팝콘을 품에 안고 작게 흥분하고 있었다. 


너랑 대리, 둘 다 정리하려고 했어.
(응, 내가 먼저 정리했죠?)

 퇴사 면담에서 꺼낸 첫 문장이었다. 그래서 그건 내 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몸이 아파서 퇴사하고 싶다고 했다. 너 때문이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이 업계에 다시 와야 하니 최대한 좋게 나가라는 게 주변의 조언이었다. 원래 나갈 때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나가야 하는데.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 있어. 저 말을 하더니 대리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나를 올려치려는 전략이었다. 세게 나갔는데 내가 별 반응이 없으니 못나게 나를 올려쳤던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쉽다고 했다. 나랑 일하는 8개월 동안 프로젝트 하나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 그것은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치명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인테리어 업계는 순환이 빨라 8개월 동안 프로젝트 하나를 못 끝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럼에도 내가 무반응으로 나오니 갑자기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너랑은 늘 말이 안 통해.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어, 모르겠고 나 곧 퇴사죠?)


 본인의 두서없는 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또 씨부리기 시작했다. 대표의 화법은 이랬다. 미팅 후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해석해서 우리에게 전달할 때 "A를 하고 싶대, abcd를 고려해서 디자인 안 다음에 가져가보자"를  "그 사람은 이런 이런 이런 이런 이런 걸 하고 싶은 거야, 오늘은 나한테 이런 사진을 보여주더라고. 저기에 이런 이런 걸 넣어보는 거야." 모든 것이 불명확하고 전달도 확실하지 않고 방향도 없이 그저 우리가 주체적으로 하기만을 원했다. 미팅에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으니 최대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던가, 아니면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잘 집어와서 우리의 아이디어를 덧 입히게 하는 명료하고 깔끔한 화법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디자인이 될 리가 없었다. 나름의 해석으로 가져가면 본인이 생각한 게 아니라며 본인이 생각한 게 무엇인지 일급비밀인 것 마냥 입을 다물고 나는 요리조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종래에는 늘 고집이 너무 세다는 말을 들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그래서 안정적인 디자인으로 가져가면 자존감이 낮아졌다느니, 소극적이라느니 하는 뭘 해도 욕을 먹는 상황만 연출되었다. 욕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새벽 3시에도 쌍욕을 하면서 5시까지 난리를 쳤다. 그게 새벽일 때도, 점심일 때도, 저녁일 때도, 아침일 때도 있었다. 


 나는 움츠러들다 못해 터져 버렸다. 전자레인지에서 터진 노른자처럼 말이다. 이미 2주 14일을 꼬박 회사에 나왔다. 퇴사 면담 전날에는 밤도 새웠다. 전날 저녁 11시에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깔끔하게 내렸다. "정리해서 보내" 제정신이 아닌 머리로 퇴사 면담을 급하게 하고 퇴사일도 급하게 잡았다. 남은 2주도 역시 꼬박 야근을 했다. 처음에는 도면만 치라더니 다음날 주말에 출근하니 도면에 디자인에 모델링까지 싹 하고 가라는 거다. 오기로 알겠다고 하고 미친 사람처럼 했다. 2주가 걸릴 일이 아니었다. 이미 몸이 지치고 마음이 닳고 머리가 둔해져서 하루에 커피랑 에너지 드링크 4잔을 마셔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국 흡연의 힘을 빌렸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시간마다 피우면 그나마 눈 뜨고 일할 수 있었다. 2주간 흡연자들보다 더 흡연자처럼 줄담배를 태웠다.




 퇴사 다음 날 다시는 저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환희와 멈췄던 감정들이 쏟아졌다. 회사 생활 내내 아무 감정도 느끼기가 힘들었는데, 퇴사 후 한 달 내내 뭘 봐도 눈물이 흘렀다. 엉엉 울다가 주르륵 흐르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했다. 그저 흘러 보내는 것이겠거니 하며 참지 않았다. 그리고 3주를 꼬박 누워있었다. 카페인 금단 현상으로 두통에 시달리고 속이 계속 안 좋았지만 그냥 누워서 약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밥도 먹고 운동도 했다. 몸살에 걸려서 일주일을 또 앓아누웠다. 희한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퇴사한 지 두 달 가까이 되는 요즘, 떨어진 체력을 여실히 느끼면서도 머리에서는 천천히 생각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아 회복의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내가 나를 몰아붙인 것에 대한 반성과 내 감정을 잘 들여봐야 한다는 성찰을 하며 말이다. 내가 느꼈던 스트레스를 강도별로 나누고 그에 따른 신체적 시그널을 정리해서 다스려보려고 한다. 또한 소중한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을 잘 정리해서 3 아웃제를 시행할 것이다. 그때 다시 4번째 퇴사를 준비해야겠지. 나를 미련하게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 대신 잘 살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나를 보듬는 시간을 여유 있게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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