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미국의 직장문화
2005년 봄 큰 이민가방과 백팩을 메고 로스엔젤리스 공항에 도착했다. 그 당시 마음을 가득 채웠던 생각들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도, 낯선 환경에 대한 어색함도 아니었다. 단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취업에 관한 현실적인 고민들 뿐이었다.
미국에 와서 정착한 이민자들 사이에 늘 공감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오는 사람의 직업이 이민오는 사람의 직업을 결정한다는 속설이다.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문화도 언어도 낯선 이곳에서 먼저 정착한 가족과 친지들의 도움 없이는 쉽게 이곳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의 한계로 혹은 언어의 차이로, 낯선 미국땅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 기도하다.
이곳에 이민 온 지 20년 가까이 되었어도 자주 안부를 묻고 연락해 주는 친구가 있다. 긴 세월이 지나도 같은 자리를 늘 지키는 나무처럼 든든하고 고마운 우정이다. 그 친구에게 몇 년 전 힘든 일이 있었다. 40대 후반이 되자 직장을 옮겨야 하는 시련이 온 것이다. 재취업이 쉽지 않아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40-50대가 되면 퇴직을 권유받는 한국에서의 직장문화는 지금 생각해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억지스러운 문화에 오랫동안 순응하며 길들여졌을 뿐이다. 미국 IT업계에서 취업하는 이민자들의 정착과정을 보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직장문화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여러 미국의 직업군들 가운데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는 IT분야가 이민자들에게 진입장벽이 낮다.
기본적인 실력과 경험만 있다면 이전에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타 직업군에 비해 원어민 수준의 영어도 요구되지 않는다. (일을 위해 기본적인 대화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이민 초기부터 프로그래머로 일해오면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베트남, 일본, 중국 같은 동양권 사람들을 만났다. 인도, 방글라데시 같은 인도계 이민자들, 영국, 우크라이나, 러시아 같은 유럽에서 온 사람도 보았다. 이란 같은 중동 배경을 가진 동료들과도 함께 일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캐나다 아르헨티나 같은 북미, 남미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이곳에서 나고 자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미국인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많은 취업의 기회가 있다.
미국의 대부분의 직업들이 그렇듯이 미국인들에게는 공무원이 아닌 이상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특히 프로그래머들은 더 나은 연봉과 자신의 실력 성장을 위해 몇 년 일한뒤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각 회사에서는 필요한 인원을 때에 맞게 구하는 상시채용의 기회를 늘 열어두고 있다. 따라서 취업의 기회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있다.
프로그래머를 채용할 때 나이와, 성별, 학력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모두가 아는 특별한 대학을 나오지 않는 한 (예를 들어 Ivy League), 학력은 프로그래머 채용의 기준이 아니다. 이력서에 몇 줄 추가되는 참고사항 일뿐이다. 성별이나 외모, 나이로 취업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차별로 생각하는 사회분위기가 일반적이다. Resume(이력서)에 사진의 부착을 요구하지 않으며, 성별 또는 나이를 명시할 필요가 없다. 미국회사에서 프로그래머를 채용할 때는 오직 그 사람이 가진 경험과 실력 그리고 발전 가능성 만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