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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hua Kim Apr 29. 2023

영어바보 마침내 한줄기 빛을 보다

미국에 있지만 항상 이방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던 나에게

미국회사에 첫 인터뷰를 가던 날 나에게도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기회가 왔다는 기쁨도 잠시, 밀려드는 걱정 때문에 손바닥에 땀이 나고 입술이 바짝 마르고 있었다.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던 아내의 손을 황급히 붙잡고 물었다. "도착하면.. 뭐. 뭐라고 영어로 해야 돼...?" 


아내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이민 와서 정착한 1.5세였다. 본인은 한국어도 영어도 다 어중간하게 말한다고 겸손을 가장한 여유를 부리지만, 우리 부부가 미국사람들과 만나 대화할 때면 나는 슬그머니 한걸음 물러나 아내가 그들과 대화하는 동안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가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I'm here for the interview. (여기 인터뷰하러 왔어요)라고 시작하면 될 것 같아". 아내가 가르쳐준 문장을 인터뷰하러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끊임없이 되뇌며 내 머릿속은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민오기 전 한국에서의 첫 직장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곳이었다. 나름 문법과 독해에는 자신이 있어서 어찌어찌하면 미국에서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근거 없는 소망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현실은 매우 달랐다. 미국회사에서 시작한 Software Developer(개발자)의 일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작지만 자신감도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어로 말하기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생각만큼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무엇을 이야기할지 감은 오는데 막상 그들과 대화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위축되고, 목소리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만큼 조그맣게 잦아들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어공부법에 관한 여러 책들도 보고 독자들에게 검증된 유명한 영어회화책들과 씨름하며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했다.

특히 상황별로 잘 정리된 영어 표현들 가운데 회사에서 실제로 쓸만한 표현들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어쩌다 내가 외운 문장을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기회가 오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꼭 내가 말해야 할 타이밍이 아닌 데도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대화가 본론에 들어가게 되면 말문이 막히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공부를 더 했어야 했나? 다른 책을 사서 공부해야 하나? 도대체 왜 그럴까 라는 생각들이 좌절의 순간마다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미국 회사생활의 연수가 늘어날수록 감사하게도 영어환경 자체에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루종일 영어만 듣고 영어로 쓴 글들만 보고 영어로 이메일 하고 회의하는 일종의 영어몰입환경에서, 이전보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외워서 하는 영어표현들은 늘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영어를 대하는 발상의 전환이 오게 되는 기가 막힌 경험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규모가 제법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보통은 한 사람이 다하는 것이 아니라 팀회의를 하고 각 팀원에게 일을 분담시킨다. 새로운 요구사항(requirement) 이 추가되거나 버그(bug)를 수정하는 일을 할 때도 자기가  맡은 부분의 일만 계속 담당하게 된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일을 진행하다 보면 최소한 자기 영역에서 만큼은 모든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머릿속에 모든 내용들이 저절로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는 것이다.


그날은 여러 명이 평소처럼 회의실에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지금까지 담당해 오던 일에 관해 팀원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맡은 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나에게는 익숙하지만 그들에게는 생소한 내 담당분야를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처음 질문을 듣자마다 지금까지 일해오던 시스템이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몇 달 동안 이 부분의 시스템만 붙잡고 일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눈앞에 이미지가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입체적으로 보였다. 마치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반으로 쪼개서 내부에 엔진과 부품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영어를 말하는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눈앞에 그려지는 선명한 이미지를 바라보며 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기 시작했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마치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신나게 눈에 보이는 대로 대답했다. 나중에는 묻지도 않은 부분까지 먼저 나서서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만일 내가 그들과 대화할 때 공부하면서 외운 문장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가며 말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선명한 이미지들을 알고 있는 단순한 말들로 전달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선명한 이미지로 눈앞에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알고 있는 영어표현들이 많이 부족하고 발음이 조금 어눌할지라도 이전보다는 거침없이 계속 말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경험한 단계일 수 있지만 최소한 그때의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미국에 있지만 항상 이방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던 나에게, 영어를 말할 때마다 주저하고 위축되던 회색빛 기억을 뒤로하고, 이제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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