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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hua Kim Apr 28. 2023

직원과 동료의 차이

우리 모두는 따뜻한 마음을 그리워한다.

Francois (프랑소아)는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나의 매니저였다. 그의 유럽스타일의 외모와 이름을 처음 대했을 때, 당연히 유럽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민자였다.

어릴 때 이민 와서 그런지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스페인어를 거의 완벽하게 했다. 대부분의 남미 사람들처럼 그 또한 축구에 특별한 애착과 관심을 보였는데, 매번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운이 좋아 티켓을 사게 되면 휴가를 내고 경기장에 직접 가서 아르헨티나를 응원할 만큼 특별했다. 그는 회사일에서만큼은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완벽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팀원인 나도 그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시간 내에 일이 계획된 대로 진행되리라는 왠지 모를 신뢰감이 있었다. 지금은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기회가 있어 다시 모일 때면 우리는 늘 함께했던 회사에 대해 추억하며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고는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

그와 내가 함께 일했던 회사는 닷넷 붐이 일던 1990년대에 시작된 회사였는데 닷넷 거품이 빠지고 수많은 회사들이 사라져 갈 때에도 살아남아 NASDAQ (미국주식시장)까지 상장된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일하기 전 나는 작은 규모의 벤처기업에서 일했었다. 여러 고객 회사로부터 수주한 프로젝트를 시간 내에 완성하기 위해 새벽까지 일하고 다음날에도 일찍 출근해야 하는 일들이 자주 있던 힘든 곳이었다.

당연히 직원들을 위한 특별한 복지는 거의 경험한 적이 없었다.


새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확연히 다른 회사의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즐거운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항상 이메일이 도착했다. 당일에 준비된 breakfast 메뉴와 함께, 오늘도 힘내고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라는 메시지였다. 어떤 날은 muffin, burrito, seasonal fruits etc. 간단하지만 아침식사로는 충분한 음식들이 회사 키친에 준비되어 있었다. 커피는 자판기처럼 보이지만 원두를 직접 갈아서 신선한 커피를 만들어 내는 고급 머신이었다. 물론 동전은 넣지 않아도 작동했다. 스낵을 위한 자판기는 따로 몇 대가 있었다. 과자와 탄산음료들을 언제든지 원할 때 동전을 넣어서 고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놀랍게도 모두 25센트였다. 한 동료는 농담으로 말하기를 아침에 일찍 와서 5불로 비싼 간식을 다 골라서 바깥에서 팔면 금세 부자되겠다고 할 만큼 종류도 다양했고 좋은 물건들로 항상 채워져 있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회사의 휴가정책이었다. 보통 미국회사는 본인이 받는 paycheck (2주에 한 번씩 받는 급여) 마다 평균적으로 작게는 3.5 시간 많게는 5.5 시간을 PTO(Paid Time-Off)로 주고 아플 때에 쓰라고 sick day를 매년마다 따로 준다. PTO는 법적으로 보장된 시간들이라 모아서 휴가를 가든지 아니면 퇴사할 때 돈으로 환산하여 지급한다. 그러나 sick day는 쓰지 않으면 매년마다 사라지고 퇴사할 때도 돈으로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아예 sick day가 없었다! 처음부터  sick day가 포함된 PTO를 넉넉하게 주었다. 당연히 매년마다 쓰지 않으면 계속 적립되고 회사를 옮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은 시간은 돈으로 지급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Thanksgiving 주간, 그리고 Christmas Day부터 New Year's Day까지가 가장 선호하는 휴가 기간이다. 이때를 위해서 자신의 휴가시간들을 모아두는 것이다. 연말에 모두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받았다. 12/24부터 1/1까지 최소인원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휴가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메일을 받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는데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매년 그래왔던 것이다...


금요일 오후는 Happy Hour라고 해서 3시에 업무를 마치고, 키친에 오피스 매니저의 선택에 따라 주변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들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맥주도 있었다. 그것도 여러 종류로 말이다.

물론 다른 계획이 있다면 그 시간에 퇴근해도 된다.


내가 속한 개발팀들은 (여러 팀들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팀런치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3개월에 한 번씩 팀빌드 이벤트가 있어서 밖에서 영화를 보거나 야외활동을 함께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때 경험했던 다양한 미국 레스토랑들이 미국에 이민 오면서부터 가족과 함께 갔던 레스토랑보다 훨씬 더 많고 종류도 다양했다. 우리 팀의 디렉터는 특히 Shogun이라는 레스토랑을 좋아했는데, 음식을 만들면서 다양한 쇼를 보여주는 일본식 식당이었다. 너무 자주 가서 우리는 메뉴며 그 쇼를 다 외울 정도였다. 그 사람들도 우리를 보면 당황해했다. 보여주는 쇼는 항상 같은데 우리가 매번 어떤 반응을 보였겠는가.


같은 회사 다른 문화

그곳에서 일하면서 몇 년 뒤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회사와 경쟁 관계에 있던 더 큰 회사가 우리 회사의 인수 합병에 성공한 것이다. 처음 6개월 동안은 낯선 환경에 대한 술렁거림 이외에는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내부적인 통합 작업이 마무리된 후 가시적인 변화로 나타난 것은 HR부서에서 (Human Resource Department: 인사부서) 일하던 직원들을 해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된다. 회사가 하나가 되었는데 같은 일을 하는 HR부서가 두 개일 수는 없었으니까. HR직원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보이던 그들의 어색한 웃음과 눈에 고이던 눈물을 기억한다. 과연 그 모든 과정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함께 일했던 그들을 존중하며 보낼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매일마다 타임카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몇 시에 일을 시작하고 점심시간은 언제이며 언제 퇴근하는지 정확하게 시스템에 로그인해서 작성해야 했다. 우리가 누리고 감사해하던 여러 활동들도 하나하나 알게 모르게 사라져 갔다. 회사가 주는 복지혜택들을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겉으로는 더 좋은 변화인 듯 보였다. 매달마다 운동할 수 있게 Gym 멤버십 비용을 따로 지불했고 먼 곳에서 통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통비도 추가되었다. 오피스도 더 넓은 곳으로 옮겼으며 각 회의실마다 화상 통화로 원거리에서 미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뭔가가 달랐다. 그것은 아마도 회사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의 온도차이였으리라.


매니저들도 이전에 없던 압력과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는 항상 눈에 보이는 결과들을 요구했고 다양한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제출해야 했다. 환경은 좋아 보이지만 우리는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답답해하며 항상 정해진 대로 달려야 했다. 이전에는 더 나은 회사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직원들의 아이디어도 공모하고 상도주며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5년 차, 10년 차가 되면 (오래 일한 동료들이 많았다) 모두들 모여서 축하해 주고 회사에서 준비한 감사 선물을 주곤 했다.

그렇게 서로를 존중해 주는 문화도 차츰 없어지고, 정해진 시간 안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일방적인 문화로 변해갔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씩 퇴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자부심과 연대감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나도, 매니저도, 그리고 다른 팀원들도 하나둘씩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따뜻한 마음을 그리워한다

회사를 옮긴 지 수개월이 지나서 이전 회사에서 일했던 기간 동안의  tax (세금) 서류를 받기 위해 이메일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잊으려고 했었는데 좋은 기억과 퇴사하기 전 암울했던 기억이 뒤섞여 마음이 착잡했다.

연락처를 살펴보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던 Kerry라는 낯익은 직원의 이름을 발견했다. 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분은 나보다 더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정중하게  tax 서류에 관해 요청하면서 즐거웠던 회사에서의 추억담을 회상하며 그때가 그립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혹시 이미 회사를 떠난 사람이라고 연락을 늦게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답장은 신속히 왔다. 아주 친절하게 서류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몇 줄의 빈칸을 넘어 그분도 이전의 회사생활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고 그때가 그립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메일 너머이지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일을 위해 회사에 출근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존중받는 사람으로 더 살갑게 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직원이 아닌 동료의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개성과 생각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따뜻한 마음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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