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긴장했어!
신입사원에게 설레는 순간이자, 두려운 상황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출근시키는 업무하는 인사담당자도 첫 출근이 있다.
아주 오래된 나의 첫 출근을 회상해 봐도, 요즘 누군가의 첫 출근과 다르지 않다.
이른 봄, 출근하는 날에 눈이 펑펑 내렸다. 함께 배치받은 입사 동기는 첫 출근날 지각했다.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온 나는 지각 없이 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내가 배치받은 인사팀은 단출했다. 팀장을 포함해 3명이었고, 신입사원 둘이 배치되어 5명이 된다. 전임자 대리 1명이 당시 핫한 회사 네이버로 이직하면서 신입을 충원하게 되었고, 그 빈자리 TO가 1개가 아닌 2개로 늘었다.
배치받은 조직은 기획, 재무, 인사가 묶여 한 층에 모여 있었다. 이 회사를 입사 전 다른 기업에서 신입 연수 및 배치 OJT를 받았고, 업무분장 직전 이 회사의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나는 신입사원이 첫 출근을 하면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것이 ‘태도’ 테스트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정말 시킬 일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일을 잘 시키는 것이 조직 역량이었다. 만약 출근하자마자 일을 시킨다면, 업무 프로세스가 잘 관리된 회사이거나, 인력이 너무 부족해 막무가내로 일 시키는 체계 없는 회사일 수 있다.
내게 채용 안내를 해준 선임 채용담당자는 면접관이었던 팀장, 부장, 소장 순으로 인사시켰다. 내 책상 위에는 새 PC와 꽃다발이 올려져 있었고, 환영 풍선이 파티션에 붙어 흔들리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고, 나는 어울리지 않은 정장과 아픈 발로 인사를 다녔다.
나의 입사 인사를 받는 사람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본인 소개하며 아주 잠깐 이야기 나눴지만, 그들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의 이름을 빨리 외워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한 번에 외워야지 하는 과욕은 부질없다.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입사 첫날 이름을 외워야지 하는 마음이 든 것은 신입사원의 '순수함'이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 신입사원의 ‘지속적’ '지나친' 욕심은 위험하게 보인다. 열정이 넘치고, 과욕을 부리는 신입사원의 부류는 잠시 귀여워 보이지만, ‘지속적’인 욕심은 이탈 혹은 불만인의 징후가 된다. 과도한 성장 욕구는 쉽게 피로해지고, 회사가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격지심이나 회사의 매너리즘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선배’들의 적절한 코칭이 필요하다. 빠른 성장을 요구하는 ‘욕심 많은’ 신입사원일수록 빠른 좌절감을 맛보고 결국 퇴사로 이어지기 쉽다. 조직이 커질수록 성취욕 높은 신입사원보다 조직 문화에 타협하고, 신입사원이 손에 닿는 목표에만 집중하여 작은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가기를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게 없는 큰 조직에 입사할수록 신입사원도 회사에 바라는 게 없어지는 시기가 빨라진다.
신입사원의 첫인상은 그들에게 어떻게 전해질까?
스마트하고 깔끔한 차림의 외모보다 '말길'을 알아듣고 간결하게 대답하는 게 신입사원을 더 반짝반짝이게 한다. 면접도 그렇고, 첫 출근도 그렇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보다 상대방이 뭘 물어보는지를 알아듣고 대답하는 그 '표정'이 첫인상을 결정하는 듯하다. 오랜 회사 생활에서 만난 이상적인 신입사원은 ‘말을 이해하고, 묻는 말에 대답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바로 반응하는 친구들이다.’ 주어진 과제를 빨리 해결할 확률이 높은 부류의 신입사원이다.
출근 첫날, 배치받은 조직의 임원은 나를 '테스트'했다.
입사 첫날, 축하 메시지보다 먼저 질문을 던졌다.
비전은 무엇인가?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담배는 피는가? 운동은 하는가?
면접같은 질문 공세에 준비가 없던 내가 망설이자 고성으로 야단을 쳤다.
축하를 기대했던 나에게 쏟아진 비난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명확하게 기억하는 문장이 있다.
‘내가 너를 잘못 뽑았다고 생각하게 하지 마라’
지금은 고인이 된 이분의 '그 말'은 참으로 고약했다.
신입사원 출근 첫날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는 독한 말이었다.
고속 성장한 임원들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다. ‘상사에겐 충성을 후임자에게 가혹하게’ 경쟁조직의 생리를 조기에 섭렵해 40대 초에 임원을 단 그는 거대한 조직에서 경쟁을 뚫고 올라선 입지적인 인물이다. 입사 면담 당시 그는 내가 입사한 조직에 부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고학력, 고집 센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독불장군과 같은 고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면담을 끝내고 나오니, 자리로 돌아오자 인사팀 선배는 ‘고생했다’ 말했다. 대뜸 그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귀띔이라도 해주지’ 무슨 면담을 하는지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그 선배가 미웠지만, 이 또한 테스트인가? 하며 미움을 거두어들였다.
첫 면담부터 야단맞은 난 더욱 긴장했다. 그날 인사를 나눈 거의 모든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 몇 년만 지나면 사람들이 타 부서 신입사원에게 관심을 기울일 에너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반갑기도 하고, 또 불편하기도 한 미묘한 신입사원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시니컬하게 평가하는 직장 생활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독특한 규칙이 있는 인간관계의 연속이고, 회사는 특별한 목표를 가진 인간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연극이 필요하지만, 금방 들키는 흥미진진한 회사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