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커 Jun 19. 2023

회사 점심 (이걸 참는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함

첫 직장 점심은 요즘 말로 구식(구내식당)이 기본이었다.

두 번째 직장 직원들은 구식보다 외식을 좋아한다. 현 직장의 점심 문화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첫 직장 사람들은 주어진 1시간을 활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생각해야 했었다.


구식 밥을 먹는다면, 아주 빠르면 15분 정도 걸리고, 늦으면 30분 정도 걸린다. 직장인에게 30~45분 정도의 휴식 시간이 있다. 그러나 고층 빌딩에서 지하 식당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얌체들을 매번 만난다. 식당의 인기 메뉴는 늘 긴 줄이 있다. 소중한 내 휴식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구식은 다양하지만 먹을 만한 메뉴는 1~2가지이다. 식당은 부장과 보통 함께 움직이는데, 20세기 직장인 나의 식당 메뉴는 거의 매일 부장과 같았다. 딱히 음식을 가리지 않는 직장인들은 높은 확률로 짧은 줄을 선택한다.


회사엔 헬스장, 농구장, 족구장(올드한 회사?) 등 운동 시설도 있고, 휴게실, 편의점, 각종 사내 입점 가게들도 있다. 회사를 벗어나면 주변을 산책할 수도 있다.


회사원은 운동 할 수도 있고, 낮잠 잘 수도 있다. 회사를 잠시 벗어나 산책할 수도 있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 수 있다. 난 주로 낮잠을 자거나, 점심시간에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 브라우징을 한다. (업무 시간에는 주식 등 업무 집중 방해 사이트가 접속 차단된다) 회사는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점심시간이면 불을 끄기 때문에 낮잠 자기는 딱 좋다. 이게 평범한 직장인의 점심시간이다.




내 첫 직장의 점심시간은 한 분 때문에 특별한 기억이 있다. 늘 함께 먹는 차장이다. 맞다. 첫 회식에 학력으로 사람 구분하는 '열등감' 두르신 그분 맞다. 그분과 함께 밥을 먹으면 힘든 점이 있었다.


그는 밥을 엄청나게 빨리 먹는다. 그리고 자기가 다 먹으면 잔반을 모아 기다린다. 식사할 땐, 고개를 푹 숙이고 흡입하듯 국을 후루룩후루룩 마신다. 밥숟가락의 움직임은 아주 천천히 밥을 떠서 급하게 입으로 가져간다. 숟가락에 가속도가 붙는 착시가 생기기도 한다. 항상 땀을 흘리고, 휴지를 뽑아 정수리부터 이마, 턱, 목까지 땀을 닦는다. 그리고 밥을 다 먹으면 비염 증상으로 인해 코를 푼다. 구식의 식탁은 넓어서 그나마 괜찮다. 가끔 회식이나 부서 외식을 할 때면 바로 코앞에서 그 퍼포먼스를 직관해야 했었다.


- 차장님, 우리 밥 다 먹고 짬 시키면 안 돼요?


그 차장과 친해지고 난 뒤 식당에서 한마디 했었다. 같이 먹는 사람들이 생각해서, 밥 먹는 속도가 빠른 건 개인차라고 하더라도 잔반은 모든 동료의 식사가 끝난 후에 잔반을 한 그릇에 짬 시키는 게 좋겠다고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았다. 비교적 밥을 늦게 먹는 편인 나는 기다리는 팀원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다 먹은 차장의 잔반이 한 그릇에 담긴 모습은 계속되었다. 물론 나보다 식사 속도가 느린 친구도 있었다.


- 끄킁~ 푸흥~


그는 심각한 비염이었고, 업무 시간뿐만 아니라 임원 보고에서도 코를 풀었고, 심지어 콧물을 마셨다. 보고 받던 한 임원은 더럽다고 지적까지 할 지경이었다. 아픈 걸 어떡하나? 대부분 직장인은 그냥 넘어갔다. 그의 습관은 점심 시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본인 밥을 먹을 땐 코를 풀거나 먹진 않는다. 밥을 먹으니까 그런데, 다 먹고 동료를 기다리는 동안 그 습관(병)의 증상이 나타났다.


- 푸웃, 피익!

- 어어억! (꿀꺽)

- 카아악, 크으윽!

한 줌의 휴지를 뽑아 침을 받아 뱉는다. 이럴 땐 정말 미쳐버린다.


그는 늘 그렇게 점심을 다 먹고, 잔반을 모아 짬 담아두고 동료를 기다린다. 습관대로 코를 풀거나 킁킁거리며 코를 마시고 이내 뱉아낸다. 더러워서 못 참을 것 같지만 참아진다. 그는 우리 팀원이고 선배이다. 직장이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참아진다. 적응(?)하고 나면 사무실에선 백색 소음처럼 들리긴 했지만, 여전히 식사 시간에는 참기 힘든 상황이었다.


신입사원때 그가 사무실에서 내 옆자리였을 때, 그는 3단 콤보 코 풀기, 코마시기, 마신 코를 침으로 뱉기를 자주 했었다. 오후 2~3시가 되면 휴지통 다 찰 정도다. 문제는 그 휴지가 내 책상 아래 휴지통이 그의 콧물가래퍼포먼스 흔적으로 가득 차는 거다 . 그는 3단 콤보의 결과물들을 내 휴지통에 버렸었다. 꽉 찬 잔해물 휴지통을 슬쩍 그의 자리로 밀어서 옮겨두면 다음 날 아침 그 휴지통은 내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 아이 씨~ (속으로)


다음날, 그는 또다시 내 휴지통에 그의 3단 콤보 잔해물을 버리기 시작했다. 꽉 찬 휴지통을 보면서 신입 사원이었던 난 '한마디'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회사 생활 25년이 넘은 회사 생활을 부장보다 오래 근무한 차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선배도 아니고 까막득한 선배다. 그리고, 두어 달 지난 시점에 그에게 휴지통 하나 드릴까요?라고 물어보고 그의 자리 아래 새 휴지통을 놓아두었다.


나중에 알았다. 휴지통의 위치는 그가 옮긴 게 아니라 새벽에 오신 미화원분들이 손길이었다. 미화원분들은 우리가 출근하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고 사라진다. 휴지통이 계속 내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그 위치가 그 휴지통 위치였다.




가끔 회사 근처로 점심 회식을 하게 되면, 그의 결정권이 강해진다. 부서 회식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저녁 회식 예산을 감안해서 점심 메뉴는 가성비 좋은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 그의 점심 회식 메뉴 선택 리더십은 부대찌개, 감자탕에 과몰입했었다. 건강 생각하는 부장의 눈치를 보면서도 자기가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선택한다.


가끔 후배들의 의견으로 점심 회식을 하고 나면 은근히 부장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음식이 너무 맛이 없다. 양이 적다. 느끼하다. 비싸다. 다음 점심 회식은 그가 정하고, 부장은 부대찌개가 못마땅하지만 맛있는 것 인정한다.


- 햄은 건강에 안 좋아, 근데 그런 게 맛있어


부장은 자기 옆에 붙어 있는 자기편인 사람을 좋아한다. 말 걸어주는 사람, 본인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 부장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관련 정보를 가져다주는 사람... 즉 인간적으로 부장(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 본인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회사에선 생각이 비슷한 사람에 호감이 생기고, 본인이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고, 그 정보를 본인과 비슷하게 해석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상황에 빠지면, 본인이 손해 보는 일도 기꺼이 감수한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먹더라도 참는다.  


이 차장이 어떻게 부장을 길들이는지는 다음 기회에...

작가의 이전글 퇴사 직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