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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Oct 17. 2023

직장인 가을 낭만(사람 냄새)

센티멘탈

여름이 지나, 추석도 지나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가을이다. 직장인은 바빠진다.


- 실제 실행되지 않은 후임자 계획을 왜 밤새 세우냐?


기획(돈 관리부서)이 딴죽 걸면, 인사는 받아친다.


- 일치하지 않는 숫자를 왜 그리 밤새워 추정합니까?


실행되지 않는 계획을 끊임없이 세우는 과정이 회사 일이고, 밤새 세운 계획을 보고하며 '결정해 주세요~'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작년에 세운 계획이 얼마나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한해가 지나간다. 인사에서 올해 성과를 정리하고, 회사 리더십을 모니터링, 평가를 준비하는 데 많은 자원을 투입해도 연말에 직장인은 엉뚱한 결과를 마주하곤 한다. 조직책임자는 시스템적으로 보고받고,  보통 인간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결과가 엉뚱하다.


- 이것 때문에 내가 밤을 새웠나?


아무리 분석하고 각 부서의 의견을 수렴해 고민해도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위-아래-좌-우로부터 흔들리기 쉬운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에 인사철에 정치가 난무하고, 사내 정치 효과는 좋다. 직장인의 가을에는 눈치를 살피는 사람, 묵묵히 일하는 사람,  상사에게 아부하면서 아닌 척 하는 사람, 대놓고 상사에게 아부하면서 그게 '회사 생활'이라고 푸념하는 사람들에게 평소보다 많은 업무가 부여된다. 다들 고생하기 때문에 가을, 겨울에 인사-사내 정치 이야기에 더 민감하고 풍성하며 재미있다. 평범한 직장인은 사내 정치를 혐오하면서 안줏거리 삼아 즐기고 사내 정치 때문에 손해를 본 경험을 하나 정도 가지고 있다.



'처서'가 한참 지났다.시원한 바람이 불고,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시기가 지나 서리가 내리는 완연한 가을이다.


회사 생활 얼마 되지 않는 늦여름 이맘때, 메신저(추억 새록새록 하다. MS메신저)드디어 처서다'라며 프로필을 바꿨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부장이 나에게 물었다. 부장과 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난 대학생 티를 벗지 못한 사회 초년이었다. 내 고집과 회사 생활을 요구하는 부장과 정서적으로 대치 중이었다. 나의 빈틈을 찾던 부장이 갑자기 까칠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 처서가 뭐야?

- 여름이 끝나고 시원해지는 시기인데요~

- 처서 단어 뜻이 뭐냐고? 한자로 어떻게 쓰지?

- 모르겠습니다.


당시 난 처서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고, 지금도 모르겠다. 부장의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부장은 정확히 단어 뜻도 모르고 쓴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날 이후, 메신저에 개인적인 내용을 올리지 않는다. 회사 생활은 갑자기 개인 삶에 쑥 들어와 변화시킨다. 나 같은 소심한 사람들에게 더 그렇다.


부장 송곳니 공격에 제대로 물린 사건도 있었다. 부서에 결혼하는 대리 선배가 있었다. 그녀의 결혼식 날, 고등학교 친구가 나를 지방으로 불렀다. 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입원했다며 하루만 병상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딱 결혼식 날이었다. 그날 난 병원에서 그의 머리를 감기고, 화장실에 동행했다. 당연히 결혼식에 난 가지 못했다. 직장인으로서 나의 실수는 결혼식에 못 간다고 부장에게 미리 보고하지 않았던 거다.


피곤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자 부장은 아침부터 회의를 소집했다. 이내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고 나에게 결혼식에 왜 안 왔는지 따져 물었다. 대치 중이었던 부장과 나는 불꽃이 튀었다. 같이 입사한 동기는 안절부절못했고,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현명하게도 침묵했다. 난 친구가 입원해서 지방에 내려가야 했다고 답했지만 부장은 믿지 않았다. 부장 눈에는 그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이기적인 신입사원이었을 뿐이었다.


부장은 소리를 질렀다.

- 거짓말하지 마! 이새끼야~


그날의 기억은 회사 생활하면서 기억하는 몇 가지 추악한 장면 최악 중 하나이다. 더욱 재미있는 후기는 내가 그날 간호했던 친구는 내 돈을 떼어먹으면서 연락이 끊기었다. 그리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마'라고 소리 지르던 부장과 정서적 대치가 끝난 후, 난 몇 년간 높은 평가 점수를 받았다. 그 부장은 내 연봉을 남들보다 높게 올려 주었다. 난 드센 신입사원에서 한동안 순종적이고 사사건건 보고 잘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처서가 지나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이다.

(지금 회사에서 더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으나, 시간이 지나야 정리가 될 것 같다.)


가을은 '사업계획'의 시기이다.

매년 가을에 업무가 엄청났다. 10월이 되면 새벽에 퇴근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자주 물었다.


- 그게 일이 많아?

- 엄청


계획은 계속 바뀐다. 보고를 끝내도 바뀐다. 부서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갈등은 계속된다. 조직 간에 조율된 결과물이 명분이 되어 보고서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몇 장의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수십 장의 첨부 자료를 만들고, 수백 건의 자료를 읽고 짜깁기하는 직장인은 밤늦게 불 켜진 빌딩에서 가을을 보낸다. 수면이 부족한 멍한 눈으로 최종 보고서 오타를 찾는 것이 마지막 순서이다.


손이 시린 가을 밤, 야근을 마친 직장인들은 충혈된 눈으로 택시를 잡거나 소줏잔을 잡는다.

보고서로 한바탕 고생하고 나면, 상사와 나의 거리는 한층 더 가까워진다.

상사는 고생시킨 팀원들에게 미안하지만 미안하다 사과하지 않고, 팀원은 상사가 바꾼 수많은 보고 버전을 만들면서 욕이 쌓이지만 욕하지 않는다.


때론 덥지만 땀 나지 않은 가을이고, 때론 춥지만 시리지 않은 직장인의 가을이다.

사람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직장인의 인사철이 다가온다. 흔들리는 사람 냄새나는 가을이다.


올해 연말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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