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의 유익(안단티노)
첫 회사는 10년 정도 다녔다.
그 회사에서 조직을 3번 정도 옮겨 다니면서 경력도 쌓았다. 인사담당자로 채용, 평가, 노사, 조직 등 인사업무의 한 바퀴 돌았고, 새로운 조직과 신사업을 설계하는 경험도 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M&A TF에 참여하여 경력도 쌓았다.
그런데
왜 이직하려고 했을까?
한 회사에서 10년을 다니다 이직하면 답답해진다.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롭고, 프로세스가 달라 바보가 되기도 하고, 시스템이 달라 일시적 신입 사원이 된다.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다. 적응하기 가장 어려운 건 조직‘문화’이다.
결국 사람 관계이고, 나에게 회사 생활의 교과서는 '첫 회사'이기 때문이다.
첫 직장에서는 정년퇴직 희망이 없었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났지만 돌볼 시간이 없었다. 주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에서 11시가 너머 집에 오면,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육아에 지친 표정으로 나에게 쏟아낼 말을 담아 기다리는 아내를 보기도 힘겨웠다. 허리가 아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다음 날에도 출근해야 했고,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해도, 부장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예상했지만, 부장은 시원하게 ‘입원해’ ‘쉬고 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입원 치료를 받지 못했다.
당장 눈 앞에 업무 공백을 불편해 했고, 그 공백으로 인한 업무 지연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항상 조급했고, 회사는 늘 위기였으며 주어진 모든 일이 절실해 보였다. 직급이 높을수록 일정과 성과에 더욱 절실한 구조였다. 나도 그들의 조급함과 절실함을 이해했다. 반면 조직에 책임있는 사람들은 책임에 비례해 직원들의 연봉과 단기적 커리어를 결정할 막강한 힘이 있었다.
저녁 8~9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늦은 퇴근’은 10시 이후이다. ‘좀 늦은’ 퇴근은 12시 이후이거나 새벽 퇴근이다. 8~9시에 퇴근하면서 맥주 한잔하자는 선배들을 거절하지 못해 와이프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시절이다. 그렇게 바쁘면서 '회식은 왜 하냐?'라는 핀잔이 싫기만 했다. 상사와 동료에게 좋은 사람이기 바라며, 그 좋은 사람이 회사에서 더 좋은 포지션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나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잔병치레하던 와중 부장이 던진 말이 이직 결심의 불씨가 되었다.
-니 몸 니가 챙기는거야~.
이 말은 분명 걱정해서 던진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아프면 너만 손해야~’라고 들렸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고,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사안으로 인정받으며 진척도 좋은 상황이었다. 대기업에서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사안은 정말 흔하지 않다.
'퇴직해야겠다.'
그날 처음 퇴사를 생각했다.
퇴사 결심 이후,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에 지원해 덜컥 이직하고 말았다. 공무원 조직 같은 회사였다. 출신 대학과 입사 경로에 따라 '끼리끼리' 교류하는 폐쇄적인 측면이 있었다. 주로 독점기업 혹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회사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즐기는 것 같았다. '철밥통' 회사 말로만 들었지 그걸 경험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개방적이지 않은 '철밥통' 회사는 딱딱한 벽이 있었다. 특히 정서적인 벽이 정말 높았다. 외부와의 경쟁이 아닌 내부 경쟁으로 조직의 성패가 결정되는 조직문화는 '굴러온 돌' 외부인에게는 관대하지 않았다. 과거 높은 채용 선호도 기업의 자부심과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꽤 했던 사람들의 집단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의 집합체와 같았다. 이직한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자존심이 상하기 마련인데, 모종의 '로얄티'로 뭉친 회사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은 착하고, 순수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여기 직원들은 그저 온실 속에서 예쁘게 자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철밥통' 기업의 세계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니 그들이 얼마나 이물감을 느낄까? 몇 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나의 이질감이 일부 동정심으로 바뀌기도 했다.
온실 속 사람들이 모두 착하진 않았다. 가끔 예의에 어긋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유 없이 경계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에서 ‘저 미친놈’ 하는 생각까지 이성과 감성을 오가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의 경력사원 첫 출근은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첫 출근에 입사 환영식이라는 생소한 행사도 하고, 사장까지 만났다. 임원들과 인사를 하고, 학창 시절이 생각나는 ‘훈화’ 말씀도 들었다. ‘기업마다 문화가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새 직장의 동료들은 경력 입사자가 '전문가'이기를 기대한다.
‘어떤 사람일까?’
‘일 잘하겠지?’
인사담당자로 많은 경력 직원들을 입사시키고 퇴사시키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채용의 성패는 조직과 궁합이 잘 맞는가’가 좌우한다. 아무리 전 조직에서 뛰어난 사람들을 데려왔다고 하더라도 그 문화와 어울리지 않으면 성과는커녕 조직에 분란만 만든다. 그걸 함께 입사한 동료들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통상 조직은 뛰어난 사람들의 의지를 가볍게 뭉갤 수도 있다.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외부 전문가를 강렬하게 원하지만, 그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관성이 강력하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외부인이 입사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피- 전문가'가 아닌 '우리 회사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하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경력사원은 그냥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조직에 스며듦을 택하거나 밖으로 튕겨나간다.
시간이 지나면 본의 아니게 혹은 자연스럽게 딱 밥값만 하는 사람이 된다.
'조용한 사직'이 아닌 '조용한 이직'되겠다.
이렇게 난 허술함과 순수함이 매력적인 회사에 몸담게 되었다.
아마존 숲에서 허덕이며 힘들었는데,,, 온실에 자리를 잡으니 재미없고, 답답하지만 유익한 면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