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안단티노)
가끔 사내 연애와 황당한 연애와 관련된 사연들을 커뮤니티에서 읽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었다. ‘있을 수 있는 일’에 대한 판단은 상식이 저마다 다르듯, 검은 머리 생명체마다 다를 수 있다.
내가 다녔던 첫 회사에서도 커뮤니티 게시글과 같은 일들이 생겼었다. 꼼꼼히 생각해 보면, 지금 다니는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검은 머리 짐승들은 사랑하고 또 미워한다. 심지어 혼자 사랑한다. 위험천만한 짝사랑(집착)이 범죄가 되어 뉴스에 나기도 한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일들이 회사에서 일어나면 지저분해진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개인 차원에 머물지 많고, 단순하지도 않다.
아마 15여 년 전 어느 봄날 흉흉한 소문이 들렸다. OOO팀의 ㅁㅁㅁ직원이 신입 사원을 스토킹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체육대회, 장기자랑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입 사원은 인기가 많았는데 그 친구를 팀 선배가 스토킹했다는 소문이었다. 같은 팀에 근무하던 가해자는 30대 유부남이었다. 그는 신입 사원을 회의실로 불러내 원하지 않은 39금 고민을 털어 놓았고 신입 사원을 감시하는 듯한 문자를 다량 발송했다. 회사는 경고 조치와 함께 가해자의 소속을 XX TF로 옮겼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했다. 소문의 본격적으로 퍼진 시점이 재발 사건이 터지고부터 였다.
예전에는 사내 사랑과 괴롭힘을 구분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다. 스토킹이 보편적인 범죄개념으로 자리 잡기 전이었고, 스토킹에 준하는 일에 관해서도 ‘그럴 수 있지’했었다. 이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 표명이라고 치부하며 스토킹 폭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감각했었다. 나 또한 방관자 중 하나였다.
대학을 막 졸업한 신입 사원은 회사 선배들과 함께 뭐든 배우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다소 ‘불합리한’ 요청에도 ‘이 또한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며 따라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상황에 몇 번 부딪히더라도 대부분은 ‘이유가 있었을’ 상황이 있었을테고, 일부는 부당하지만 ‘부조리한’ 관습 정도로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팀 선배가 찾아와 ‘나 고민 있어’하며 회의실로 데려갔다. 회사의 야유회, 체육대회 등을 통해 자주 마주친 선배였다. 회의실에서 쓸데없는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와이프와의 불화 이야기로 이어졌다. 신입 사원은 ‘얼마나 힘들면...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요즘 표현으로 ‘이 사람 선 넘네?’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팀 선배는 이상한 아저씨로 변신해서 와이프와 별거하고 있는 이야기, 와이프와 섹스리스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미친...... 뭐 하자는 거지?’
신입 사원은 당황했지만, 그때까지 ‘폭력’이라고 깨닫지 못했다. 민감한 사생활을 털어놓은 변태 아저씨는 신입 사원에게 일방적으로 친밀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의 입장을 고려하고 싶지 않지만)
그는 신입 사원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가벼운 인사에서 넋두리까지 다양했는데, 그중 문제가 크게 된 내용은 ‘감시’형 문자였다. 출근하자마자 ‘옷을 이쁘게 입었다’, 퇴근하려고 정문을 나설 때 ‘퇴근 잘하라’라는 문자를 보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듯한 실시간 문자가 날아왔고, 멀리서 그녀를 훔쳐보는 가해자의 모습을 회사 동료들이 그녀에게 제보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가해자는 폭력인 줄 깨닫지 못했다. 그녀의 주변 지인들이 지켜주고, 위로했지만 피해당사자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첫 경고에도 불구하고 재발한 가해자 선배는 장기간 지방 파견을 보내면서 사건을 매듭지어졌다. 징계는 아니었지만 둘을 분리하면서 사건은 애매하게 마무리되었다.
내가 다녔던 첫 직장은 입사 경쟁이 높은 직장이었다. 게다가 고학력 직장이었다.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난 못 배운 사람인데, 운이 좋았다.) 왜 합리적인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방관자가 생길까? 아직도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쉽게는,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아~'하면 된다.
2000년대 초반 많은 회사에서 사내 동아리 등을 지원하며 내부 결속력을 높이는 행사를 많이 했다. 그와 같은 행사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생기고, 운동, 행사 등을 통해 회사의 막내들은 곤란한 부탁을 받기도 한다. 축구, 농구 경기의 응원을 맡기거나 장기자랑에 투입되었다. 지금은 이 같은 이벤트가 ‘갑질’로 규정되어 사라지고 있지만 그땐 그랬다. 조직이 결속되고 소통이 원활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했지만 ‘갑질’의 부작용이 많아 요즘 대부분 사라졌다.
회사가 직원 사생활의 영역까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개인의 친밀도가 회사 일에 영향을 끼쳤고, 그 인맥(술로, 고생으로 맺어진)이 끈끈할수록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멋진 직장인으로 평가받았다. 개인의 삶을 포기한 사례가 많을수록 ‘로얄티’ 높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특이한 조직문화가 있었다.
왜 그랬을까?
오늘 스토킹 범죄 이야기는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DP’의 대사이다. 군대 폭력 피해자가 탈영해 가해자를 찾아갔을 때, 폭행을 주도한 선임이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라고 허무하게 고백한다.
회사든 군대든 조직의 목적에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도 상명하복식의 권력관계 형성되고, 그 지위를 이용해 사적인 요구나 폭력이 생겨도 피해자는 저항하지 못한다. 그 사건들의 주변엔 수많은 방관자가 있어 가능하다고 드라마 DP가 말해주는 듯했다.
내가 회사에 몰입해서 다닐 땐, 회사가 암묵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좀 불합리해 보이지? 아니야... 이 모든 일들은 너와 회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성공할거야. 회사가 원래 그런거야’
사실 그렇지 않다.
회사는 선의를 가지고 있는 유기체가 아니다. 회사의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권력관계 속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일으키는 일들일 뿐이다.
지금 당신 앞에 선배, 부장이 이상한 행동/말을 하면 변명의 여지 없이 그저 이상한 것이고, 회사가 잘못한 의사결정을 하면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