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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Jun 01. 2023

회사 회식(21세기 속 20세기)

첫 회식

회식은 부서, 팀, 선후배 단위로 집요하게 따라오는 업무이다.

회식의 순작용과 역작용에 대해서 ‘직장인’마다 생각이 다르다.


회식을 통해 생기는 묘한 동료 의식과 스트레스 분출이 참 위험하다고 난 생각했다.

하지만, 회식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업무에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끔~


당신이 술 좋아하는 선배를 만났다면

당신이 술과 유흥을 좋아하는 과장을 만났다면

당신이 자기 집 앞까지 데리고 가서 회식을 마무리하는 부장을 만났다면

당신이 일보다 술자리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회사 생활하고 있다면      


21세기 신조어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무색한 20세기 회식에 대한 이야기다.

20세기 회식은 커리어를 끌어 올리는 빠른 길이 되기도 하지만, 소모적인 감정을 소비하는 낭비이기도 하다. 어쩜 아직도 20세기 회사가 많이 있다.




나의 첫 회식은 어땠을까?

당신의 회식도 나의 회식과 비슷할 것 같다.


입사 첫날, 마음씨 좋은 부장은 ‘밥은 먹고 보내야지?’ 하면서 회식 장소를 정했다. 첫 부장은 국수를 좋아하는 선한 분이었다. 마음 선한 부장 아래에는 의도하지 않게 독한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 보존의 법칙’인가? 직장마다 적정량의 스트레스가 동등하게 배분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싶은 정도이다.       


첫 회식은 삼겹살이다.


서울 곳곳이 디지털로 변하는 초기였으며 유리 외벽의 빌딩들이 낮은 옛 건물 사이에 솟아오르고 있었다. 첫 회식에서는 서울대 나온 사람, 연세대 나온 사람, 포항공대 나온 사람으로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말이 많았다. 그는 회사 생활을 30년 했다고 1시간마다 반복하고, 신입사원의 이름을 번갈아 큰 소리로 부르며 술잔을 비우라고 강요했다. 술병이 쌓이는 높이로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부장이 오늘은 첫날이니 세리모니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발식' 비슷한 신입 술 먹이기 이벤트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공식 환영식은 따로 잡자고 했다. 첫 회식에서 술을 적게 먹는 것이 불만인 회사 생활 30년 했고, 아이가 셋이라고 말이 길어진 과장은 담배 피우러 나온 나와 내 동료를 찾아와 내가 팀장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 뽑았다고 생각한다며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면접에 들어오지 않았고, 합격의 이유에 내 관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인사담당자는 내 면접 평가서를 볼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내가 그 조직을 떠날 때까지 내 학교 출신이 내 채용과 팀장의 평가에 영향을 끼쳤다고 까먹지 않게 정기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때마다 난 침묵으로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첫 삼겹살 회식은 일찍 끝났다. 부장은 팀원들과 회식을 하면 9시 전 후 택시를 타곤 했다. 만취 상태로 택시를 타고 떠나며 ‘한잔들 더해’한다. 그 ‘한잔들 더해’의 의미는 자기의 결재 재량권인 ‘99만 원까지 먹을 수 있어'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21세기 초 20세기형 회식은 '만취'해서 걷지 못해야 집에 보내 주는 그런 회식 문화였다. 적어도 나의 첫 회사에서는 그랬다. 부장이 떠나면 팀장들이 ’한 잔 더 할까?‘ '말까?' 멤버를 정리하고 '99만 원까지 먹으러 갈까?' 고민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만취가 어색한 신입사원은 일단 회식의 '이유'가 되어 끌려다닌다. 이게 말로만 듣던 '끝까지 남아야' 하는 '간보기'인가?라고 생각했었다. 20세기 회식은 그냥 술 먹였고, 그땐 그랬다. 돌아보면, 20세기형 회식에선 미친척 빨리 집으로 갔어야 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정시 출근해야 사랑받는다는 회사 생활의 매뉴얼이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 올드한 회사 생활 매뉴얼들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며 진급을 못하거나 몸이 망가지는 순간에 '회사 생활 허무주의'로 빠져들 수 있다.


21세기가 시작되어도 20세기의 회식 문화는 계속 이어졌다. 마음 속의 21세기는 마음 속에만 있었다.

21세기엔 자동차가 날아다닌 줄 알았는데, 겨우 전기차 시장이 열렸다.

21세기에는 로봇이 식당 서빙을 할 줄 알았는데, 겨우 키오스크가 생기기 시작했을 뿐이다.


인센티브 시즌만 되면 회사 생활 30년을 했고, 아이가 3명인 아빠의 삶이 고단함을 소문내고 다니는 과장님은 신입사원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인사담당자는 끝까지 남아야 한다."


21세기에 20세기 회사 생활 생존법을 배우며 '이건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난 회사 생활을 익히기 시작했다. (회식 에피소드는 수위 조절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수위 조절하며 조금씩 풀어보겠다.)




2023년 코로나가 할퀴고간 회사의 회식 문화가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20세기에서 배운 스킬을 펼치는 사람들과 21세기의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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