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첫 자취를 호주 브리즈번에서?

Chapter 1. 20살 브리즈번에서 살아남기

by Amy





그런 날이었다. 코로나가 한창 진행되며 방학이 끝날 때쯤이라 늦잠을 자고 어김없이 넷플릭스와 과자를 먹으며 깔깔 웃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곧 개강 날이라는 생각에 허둥지둥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해 수강신청을 확인하였다. “휴.. 다행히도.. 빠진 건 없구나”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내 눈에 뜬 건 다름 아닌 공지글이었다. 평소 학교 공지 같은 건 관심도 없었던 터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클릭해보니 글로벌 현장학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였다. 한 학기 동안 해외에 나가 실습을 하며 현지에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괜스레 궁금해서 자격요건을 검색했다.. ”어라..? 나 토익 성적표도 있고 학점은.. 낮지만 간당 간당 하다.. 미친 척 신청이나 해봐? “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신청 서류들을 챙겼다.

(지금까지도 그날의 내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게 개강이 다가왔다.





학교가 멀었기에 (4시간 통학이었다.) 그냥 학교- 집- 아르바이트만 반복하며 지구상 평범한 대학생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 지루하고 또 지루했다. 특별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따끔한 자극이 필요했다.




글로벌 현장학습 신청은 자기소개서와 필요한 서류들 (어학 성적표, 설계서 등)을 들고 지도 교수님께 가서 최종 사인을 받은 후에 심사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교수님 연구실에 방문하였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난 공부를 참 못했다. 정말 턱걸이로 지원할 수 있는 학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교수님은 꼭 신청하고 싶냐고 몇 번이고 여쭤보셨고 난 미국에 꼭 가고 싶다고 교수님을 설득한 끝에 사인을 받아 제출할 수 있었다.



신청 후 행복했다. 근본 없이 부풀어버린 희망을 안고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4시간 통학조차 즐겁게 느껴졌다. “난 2학기에는 미국 갈 거니까.. ” 지겨운 일상 속에 한 줄기에 빛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결과 발표날, 부푼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결과를 클릭했다. ‘어라..? 뭐가 잘못된 거 같은데? ‘ 합격자 20명 중 내 이름이 없었다. 명단을 세 번이나 다시 정독하였다. 끝끝내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분명 지원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자기소개서가 이상했나? 토익 성적이 높지는 않았지만.. 학점이 너무 낮았던 건가? ‘ 한껏 부풀었던 희망의 불씨가 꺼져버린 난 울지도 못하고 그저 멍 때리고 앉아 있었다.



( 앞서 말했다시피 난 공부를 잘 못했다. 처음 배우는 치아 관련 과목들은 나에게 어렵고 따분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코 좋은 성적을 받긴 어려웠다. 그러므로 어쩌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걸 수도..)



터져버린 희망의 풍선을 접어야 했지만.. 한껏 기대했어서일까.. 쉽게 마음 정리가 안되었다. 4시간 통학은 더더욱 지겨워졌고.. 매일 같은 풍경, 같은 교실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2학년 2학기 실습병원을 배정받았다. 배정받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나 진짜 미국 못 가는구나. “

이제는 내려놓고 현실에 수긍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종강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어김없이 친구들과 빠르게 뛰어 지하철에 올라타 집에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지쳐서 방학만 하면 집에서 24시간 내내 잠만 잘 거라고 스스로 되새기고 있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모르는 번호는 스팸이라고 생각해서 잘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 이 전화 한 통이 내 인생을 바꿀 줄은 아무도 몰랐다. ) ”아 또 스팸이야.. 스팸 왜 이렇게 많이 와? “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번호를 보더니 “엥? 이거 학교 번호 아니야? 행정실 이런데 번호 아닌가? ”라고 했다. 난 학교 활동도 잘하지 않던 사람이라 “나한테 전화 올 일이 없는데? 교수님이었으면 개인 톡이 왔겠지.”라고 말했지만 혹시.. 모르니 받았다.






me: “네 여보세요? ”

00: “네 안녕하세요, 혹시 000 학생 번호가 맞을까요? ”

me: “어.. 네 맞아요! 혹시 학교인가요? “

00: “네네 저희 00 학교 글로벌 팀인데요.. 미국으로 글로벌 현장학습 지원해 주셨죠? ”

me: “ 네.. 근데 저 떨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요..? “

(속마음: 혹시..? 내가 합격했는데 실수로 명단에 없었 던 건가??!?!)





(웃긴 건 이때까지만 해도 꾸깃꾸깃 접어서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둔 [미국 가기] 희망이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다시 피어올랐다.)





00: “네 맞아요. 그런데 원래 호주 글로벌 현장학습에 가기로 한 사람들이 8명이었는데 한 분이 비자 문제가 생겨서 못 가게 되었어요.. 그다음 분이 000님이셔서 전화드렸어요. 혹시 호주에 가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두 가지로 나눠져 있었다. 한국에서 실습하기 vs 2학기에 호주에서 실습하기. 정답은 당연히 후자였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왜 고민해야 하지?





me: 호주요? 네 갈게요. 갈 수 있어요.

00: (당황하시며..) 네..! 일단 부모님과도 상의를 해보시고 내일까지 생각이 있으시다면 카톡으로 확정여부를 말씀해 주세요.

me: 네.. 네 감사합니다..





너무 놀라 지하철인 것도 망각한 채, 꺅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잠을 자던 친구들은 왜 왜??! 무슨 일인데..라고 말하며 나한테 되물었다. 머릿속에는 호주 생각뿐이었다.. (난 호주에 대해 무지했다. 그냥 캥거루랑 코알라가 사는 더운 나라다.. 이 정도만 알고 있었다.) 호주라니.. 내가 호주에서 실습한다고? 호주는 뭐가 있는 나라지?



그 길로 엄마한테 [ me: 엄마 나 호주 가 ]라고 문자를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갑자기 귀가 중이던 딸한테 저런 문자를 받았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바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지하철이라 받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집에 가서 다 설명하겠다고 하였다.




메말랐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난 종강을 맞이하고 2022년 8월 26일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서 내 몸만 한 캐리어 두 개와 배낭을 메고 7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째 나오지 않는 짐을 기다리고 있다. @blueamy7







(만약 이 이야기를 좋아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번외 편도 풀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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