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밤의 카페테라스 앞에서
검푸른 밤하늘,
카페테라스에서는 커다란 가스등이 켜져 있었다. 그 위쪽으로는 별이 반짝거리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릴 때마다 나는 놀라곤 한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릴 때 검정을 전혀 쓰지 않았고, 아름다운 파랑과 보라, 초록만을 써서 밤하늘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아래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아주 밝은 노랑으로 그려보았지.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놓는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반 고흐, 여동생에게 쓴 편지 중에서>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놓는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편지 속 고흐의 문장이 참 아름답다. 수많은 복제품으로 흔하디 흔해빠진 그림이지만 직접 그 생생한 감동을 마주하고 싶었다. 막상 그림 앞에 서니 이제야 오롯이 이해가 된다. 고흐의 말마따나 밤하늘에 노란 물감을 꾹 짜서 별을 찍어 놓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을 거 같다. 편지의 활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그림의 색감과 붓터치들이 내 맘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콕' 박힌다.
아, Holland 홀랜드! 빈센트 반 고흐의 나라. 이 멋진 컬렉션을 보러, 트램을 타고, 기차를 타고, 두 번의 버스를 타고 마지막엔 자전거까지 탔다. 휴-;; 머나먼 여정이지만 내 맘속에 영원히 젊은 화가, 고흐에게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이니까! 기꺼이 한 걸음에 달려온 보람이 있다. 화가를 사랑한 한 개인이 평생 동안 사모은 소장품들이 이토록 훌륭할 수 있을까! 많은 미술관에 가보았지만 이곳은 Must go 미술관 중에 하나이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가는 길! 내 마음은 하늘 위로 통통 튀어 오르는 오색찬란한 열기구들처럼 아스라이 떠올랐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 뒤에 숨어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랬는데, 고흐의 그림은 항상 그 자신만의이야기가 오롯하게 담겨있다. 그의 그림이 아주 특별한 이유다. 늘 그랬던 것처럼 미술호구인 나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술관 내 기념 샵에서 그림 몇 장을 샀다. 그림이 구겨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돌돌 말아 상자에 담았다.
나는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구나. 빈센트 반 고흐
마음이 깊은 사람이길,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길 그토록 바랬던 이 화가가 오랫동안 난 참 좋았다. 온통 짙은 노랑과 파랑, 아름다운 색의 향연으로 가득할 것 같던 아를에 가고 싶었던건 어쩌면 당연했다. 밤의 카페테라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아를에 말이다.
푸르른 어느 5월 나는 파리에서 아를로 향했다. TGV를 타고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아비뇽에서 내렸다. 아비뇽 한적한 기차역에서 아를로 향하는 또 다른 기차를 기다렸다. 인생은 참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난 고흐를 생각했는데 예쁜 집시 소녀들의 표적이 되어 소매치기를 당했다. 여권까지 털린 간담이 서늘한 경험을 하고나서야 마침내 도착한 아를. 아!
아를의 노란 카페는 그림과는 달리 특별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촌스럽고 투박한 여느 소도시의 카페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분명 이럴 느낌이라고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렇지만 100여 년 전 별이 빛나는 어느 밤. 소박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카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만들어버린 한 화가의 재능이, 밤하늘의 별을 찍는데 가슴떨려 했던 한 남자의 시선이 참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감동했던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어딘가에서 이젤 화구가방을 메고 있는 빈센트가 툭!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빈센트의 자취를 곳곳에 느낄 수 있던 그날은 남프랑스의 미스트랄이 강하게 불던 아주 이색적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