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순 작
보잘것없는 씨앗 하나로 나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어느 숲 속.
내가 선택하지 않은 땅 위에 나는 떨어졌다.
아무도 내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홀로 살아가야 했다.
고요한 숲 속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나는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다시 어디론가 흘러가다
작은 돌맹이에 차이고 그 자리에서 나는 오랜 세월을 견뎠다.
싹을 피우고 뿌리를 내리는 일은 다행히 물과 햇빛이 도와주었다. 그날 이후 줄곧 내겐 물과 햇빛이 나를 키워 주었다.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버티며 살아나야 해서 하늘로 높이 올라 그늘진 곳을 벗어나 햇빛을 맘껏 온몸으로 받을 수 있었다.
뿌리는 숲의 땅이 모자란 듯 깊게 넓게 뻗어나갔다. 대지에 튼실한 뿌리를 박으니 세찬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만 고만한 나무들 사이로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하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 이제 내가 어디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토록 더 넓은 숲 속 나는 수많은 나무들 사이 존재하는 나무 한그루였다.
단지 그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