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 문학기행
설국이다
내가 기대하고 바라보고 싶었던 하얀 세상
순백의 세상이 그리웠던 건 아마도 찌들고 그을린
심상을 표백하고자 했던 바람이었을 거다.
겨울의 북해도는 사방이 하얀 세상이다
지붕 위에 내려앉아 차곡차곡 쌓인 눈들은 새로운 형태를 자아낸다.
하얀 털모자를 쓴 집들은 추운 겨울임에도 오히려 따뜻해 보이기까지 한다.
설원에 빼곡히 늘어선 나무들을 본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건 나무의 숙명이다.
내가 뿌리내린 그곳
그곳이 생의 시작이자 죽음의 마지막 자리이다.
사계절을 오로지 처음 그곳에서 맞이하고 보내고
또 맞이한다.
이 겨울이 지나면 잔설들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은 또 한 번의 개벽을 맞이할 것이다.
사방이 동토의 눈얼음 위로 바람이 스쳐가지만 나무는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킨다. 거슬러 생각하면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푸른 잎들을 자식처럼 매달고 바람에 팔랑거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한때는 그런 풍성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가을을 맞고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며 나무는 기나긴 차디찬 겨울을 또한 예상했을 것이다
뿌리에 생명의 끈 부여안고 모진 시간들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에 녹색의 푸르름이 있고 풍성한 잎들의 재잘거림이 침묵 속에 기다리고 있다
미우라 아야코문학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는 왜 이런 추모기념관이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다.
첫 번째 남편으로 인해 병마와 싸울 수 있었던 힘을 얻었던 작가는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유골을 안방에 보관하고 있을 정도였고 두 번째 남편 역시 지금의 아내는 첫 번째 남편에 의한 인연이라며 그의 사진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쉽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그녀의 삶의 일대기를 설명 들으며 그들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관내에는 두 부부의 친밀한 사랑의 농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가득찬듯했다.
남편은 병약한 그녀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의 대필을 맡아하면서 많은 소설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두 손 잡고 삶의 황혼길을 걸어가는 작가부부의 뒷모습이 계속 여운에 남는다. 지금은 모두 세상을 저버린 분들이지만 그들의 사랑이 남긴 자국은 이처럼 영원히 남아있다.
77년의 삶을 살아가며 그녀가 만들어온 삶의 궤적은 인류애 가득하고 이타심 가득한 세상이었고 죽음을 드리운 병마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 냈다.
과거 누군가의 삶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산 것일까!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남은 삶을 어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