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한 하루
친구 N과 미술관 나들이를 마치고 나오니, 배가 출출해지며 저녁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렸다. N은 근처에 전등사가 있다며, 자신도 가보지 못한 곳이니 함께 들러보자고 했다. 우리는 각자의 차로 천천히 절을 향해 이동했다.
전등사에 도착해 약간의 비탈길을 오르니 고목들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한눈에 보아도 수령이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나무들. 그 자체로 이 절의 시간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기록들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수령 오백 년이 넘는 은행나무, 이백 년, 삼백 년을 견뎌낸 느티나무들이 경내를 지키고 서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바람과 함께 그 나무들이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더욱 경건하게 다가왔다.
숱한 인연과 흘러가는 시대를 지켜보았을 고목들. 수백 번의 사계절을 통과하며 마치 노승처럼 묵언으로 내공을 쌓아온 모습이 그저 경이로웠다. 법당을 들여다보니 오래된 나무들로 어우러진 공간이 절의 세월을 더욱 깊게 느끼게 해주었다. 불자라면 이곳에서 더욱 강한 불심이 일어날 듯했다.
우리는 조용히 경내를 빠져나와 강화읍의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친구가 “숨겨놓았다”고 말하던 그 식당은 정말로 맛집이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회와 초밥으로 저녁을 채우고 나니 잔칫상이 따로 없었다.
식당을 나와 커피집을 찾던 중, 친구가 차를 돌려 향한 곳은 뜻밖에도 자기 집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친구의 아내에게 여러 차례 양해를 구하며 거실에 앉자, N은 “찬 공기를 데워야 한다”며 화로에 불을 지폈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은 강화의 밤, 거실 한켠에 타오르는 화로의 불빛은 오랜 친구의 마음처럼 따뜻하고 든든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는 길, 친구는 강화 순무 동치미, 총각김치, 배추김치를 한가득 챙겨주었다. 마치 부모님 댁에 들렀다 돌아오는 날처럼 두 손은 무겁고 마음은 따뜻했다. 귀가하는 동안 몸 구석구석으로 온기가 번져왔다.
며칠 동안 나의 식탁에는 오랜 친구의 정성과 온기가 반찬처럼 올라올 것이다.
친구야, 고맙게 잘 먹을게.
부디 건강하게, 그리고 너답게 행복하게 살아주길.
우리의 시간도, 전등사의 나무들처럼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