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라온제 갤러리
오늘은 현장수업이 있는날이다.
찬바람을 뚫고 삼청동 라온제 갤러리로 향했다.
오랜만에 나선 현장수업이라 발걸음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갤러리에 모인 이들은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처음 마주하는 분들이었다.
잠시 후, 임지영 작가의 수업 시작 멘트가 잔잔하게 이어졌다.
오늘의 미션은 갤러리에 참여한 네 작가의 작품을 보고,
각 작가마다 한 점을 선택해 ‘왜 그 작품을 컬렉트하고 싶은지’를 다섯 줄의 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공간을 거닐며 그림들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걸리는’ 작품들이 하나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네 점을 선택하고, 그 앞에서 조용히 글을 써내려갔다.
1. 이용범 작가 — 《On the Street 1》
작가의 말
“눈을 가린 이유는 궁금함을 자아내기 위해서.”
나도 저렇게 모던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길 위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세월의 무게에 조금씩 시들어가지만
마음만큼은 아직도 젊음의 기운을 품고 있다.
저 당당한 걸음처럼 힘차게 걷고 싶다.
2. 송가은 작가 — 《Things That are Beautiful and Transient》
(아름답지만 덧없는 것들)
작가의 말
“지켜보는 내가 오히려 찍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보는이가 주인이 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나는 다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뷰파인더 속 세계로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눈앞의 피사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형상을 사진이라는 도구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백발의 노파가 카메라를 쥐고 있는 모습처럼
백발이 된 나 또한 그 카메라를 힘껏 부여잡고
세상의 순간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랐다.
작품의 제목 속 ‘덧없는 것들’은
어쩌면 사물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그 노파 자신이 아닐까.
글이든 사진이든
나도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3. 김정아 작가 — 《여행 25.02》
작가의 말
”움직이는 모습에서 에너지를 느낄수 있으면 좋겠다
보여지지 않는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삶의 이야기를 씨앗과 꽃으로 꾸며 보았다.
각자가 자신의 열매를 맺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담고있다“
전날 꾸었던 혼란스러운 꿈이 떠올랐다.
꿈이라서 다행이었던 장면들.
언제부턴가 나는 새봄의 연두빛 새싹을 유난히 좋아하게 되었다.
꿈을 꾼다면,
이제는 연둣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진
환한 생명의 꿈을 꾸고 싶다.
4. 양윤자 작가 — 《감성여행 3》
작가의 말
”그림의 결은 곧 인생의 결이며 시간의 흐름이다“
푸른 생명력, 노란 꽃의 빛, 싱그러운 초록의 세계는
나의 마음도 푸르게 물들였다.
작은 연못에 물고기를 키우고,
텃밭에 상추와 토마토, 고추를 심고 가꿔
푸른 채소를 식탁 위에 가득 올리는 그런 삶.
그러나 전원생활을 극도로 혐오하는 옆지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그림을 보며 조용히 만족한다.
각자의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았고 작가의 작품 의도를 알게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작가들도 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 였다고 말했다. 작가와 관람자가 함께 만드는 시간은 그래서 더욱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