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루질 개념편> 잡아 잡솨 보실래요.
온 가족 함께 하는 저녁식사시간.
“아, 해루질하러 가고 싶다.”
“아빠! 나도 나도 갯벌 가고 싶어요! 조개조개!”
“나는 맛조개 또 잡아서 먹고 싶어! 제발 제발, 응?”
애비의 말 한마디에 식탁이 떠들썩해졌다. 주말에도 출근해서 고단한 신랑은 문득 일상에서 벗어나고파 바다가 그리웠을 수도 있다. 무념무상으로 호미질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채집욕구는 인간의 본능이긴 하지만서도, 자연파 가족은 늘상 갯벌을 원한다.
10월, 11월 즈음 맛조개가 제철이라 올해로 3년째, 아이들과 할로윈 젤리 대신 맛조개를 잡아먹으러 다녀왔다. 현지의 조개잡이 고수님들에 견줄 수는 없지만, 딱 우리 가족 먹을 만큼 잡아서 '너하나 나하나' 소중하게 먹는다. 맛조개의 잡는 손맛도 먹는 입맛도 내 깜냥으로는 마침맞게 표현할 길이 없다.
잡아 잡솨 보면 알아요
짜릿한 맛을 못 보신 분들께 길을 알려드릴게요. 쓰다 말다 언제 발행하려나 했던 맛조개이야기. 인생 맛이 그리워서 글로 침을 삼켜본다. 내년에는 땅 파는 실력과 글 쓰는 필력이 지금과는 다를 테니. 2023 버전 맛조개 찬사 STAR트!
맛조개는 참말로 요물이다. 바지락이나 동죽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조개들이 둥글넓적 오동통하고 귀여운 스타일이라면, 맛조개는 늘씬하고 쭉 뻗은 몸매에 맵시 나는 모델 스타일을 담당한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보통의 바지락 체형이고, 실물 영접하면 쇠꼬챙이 같은 연예인들이 맛조개 라인인거지. 태생부터가 다르다.
TV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맛조개 잡는 영상을 본 적 있는가. 어린이들이 좋아라 하는 자연컨텐츠 유튜브 채널 <에그박사>에도 맛조개는 철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맛조개 잡는 법 이론부터 파본다.
하나. 삽으로 갯벌에서 모래를 걷어내고 타원형의 맛조개 구멍을 찾는다.
두울. 구멍에 소금을 뿌리고 기다린다.
세엣. 대나무기둥 같은 맛조개가 '메롱' 하고 모래 위로 고개를 내밀 때 잡아 올리면 성공!
이렇게 쉽게 성공하면 얼마나 좋으리오. 오천 년 역사 신비한 갯벌의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에그박사는 삽질 한 번에 쏙쏙 잘도 잡아 올리던데 뭐야. 넓디넓은 해안가에 구멍은 왜 그리 많아. 도대체 어떤 게 맛조개 구멍이야. 삽이랑 호미랑 손에 들고 있어도 어디부터 파야할지 어찌 알리오올리오(조개 넣어 먹고 싶다). 맛조개가 나름 갯벌계의 연예인인데 어디 쉽게 만날 수 있겠는가. 연예인들 따로 드나드는 뒷구멍 출입구를 반드시 찾아내어 은밀하게 나오는 모습을 포획하고야 말겠다.
맛조개를 많이 잡을 목적이시면 딸기농장, 귤농장 체험 하듯 ‘ㅇㅇㅇ어촌계 갯벌 체험장’에 가시길 추천드린다. DAUM에 맛조개체험장 검색해 보시라. 어촌계에서 조개씨를 뿌리고 관리를 하기에 호미질 한 번에 동죽이 우르르 나온다카더라. 장화, 삽 등의 체험도구를 제공받고 손쉽게 손맛을 보실 수 있으니 소정의 체험비가 의미 있겠다.
갯벌파 가족은 입장료 없는 드넓은 맨땅에 삽질부터 시작했다. 야심 차게 갯벌로 출동했다가 맛조개 한 마리도 못 잡고 허탕을 친 적도 있다. 부아가 나서 그 날밤 평민스런 동죽과 바지락들 푹푹 쪄서 소주를 들입다 퍼부었지.
아픈 경험들이 과정이 되어 2023 맛조개 채집은 순항이었다. 스스로는 이듬해 해루질의 발전을 위하여 기록해본다. 관심 있으신 분들께는 꿀이고 아니면 똥이죠 뭐. 그래도요 맛조개는 마트에서도 잘 안 팔아요. 그만큼 귀하니까 쪼메 살펴봐 주세요호홍홍.
하나. 목적지는 달산포해수욕장
어디로 가나. 우리나라 맛조개의 90%는 순천만 갯벌에 있다지만 거기까지는 못 가봤다. 서울에서 주말에 아이들과 1박 2일로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은 태안. 3년 차에 정착한 곳은 달산포 해수욕장이다. 몽산포 같은 유명한 해변에 비해 아담하고 찾는 이가 많지 않아, 개체수가 많고 굵은 조개를 만날 수 있다. 사실 해변은 아담하기는커녕 널따랗다. 다만 주차 공간이 협소하여 수용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근처 펜션에서 1박 하는 걸 추천한다.
두울. 물 때 좋은 날 잡아 잡숴
이사에는 손 없는날이 있지. 해루질은 손맛 있는 날이 따로 있다. 물론 언제든 조개를 캘 수는 있지만, 물때표를 확인하는 게 좋다. 자연파 ‘J’는 어업 종사자 마냥 폰 메인화면에 <물때와 날씨> 앱을 깔고 바다의 동태를 살핀다. 수영은 못 하지만 해루질을 향한 열정만은 해녀 저리 가라 한다. 오죽하면 해외도 아닌 허름한 숙소를 무려 세 달 전인 7월에 예약했을꼬. 그만큼 물때 좋은 날이 중하다.
홍디가 방문한 날짜 기준으로 설명해 볼게요. 스흐흡 심호흡하고 찬찬히 따라오소.
1일차 10/14(토) : 6물 저조 10:15
2일차 10/15(일) : 7물 저조 10:42
물때표 보는 법을 파고들면 달의 모양까지 보는 재미가 있는데, 우선적으로 봐야 할 것은 날짜별 상단의 연둣빛 막대그래프이다. 물흐름의 세기를 나타낸 것인데 일반적으로 7~9물 사이가 고저차가 크기 때문에 조류의 흐름이 가장 빨라서 좋다. 비교해 보면 다음 주말은 물의 흐름이 약해서 허탕 칠 수도. 물이 빠르게 흘러 나가면, 그만큼 조개들이 정신 못 차리고 촉촉하게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클수록 물이 빠졌을 때 먼바다까지 땅 파러 나갈 수 있고 씨알이 굵다.
그다음으로 볼 것은 간조 시간이다. 해루질이 가능한 시간은 저조(해수면의 높이가 가장 낮을 때) 시각 앞뒤로 2시간가량 되겠다. 1일차 기준으로 보면 오전 8시 15분부터 썰물을 따라 들어가면서 10시 15분에 그날의 가장 먼바다에 찍게 된다. 저조 이후로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을 피해 육지 쪽으로 향하면서 오후 12시 15분 정도까지 삽질이 가능이다. 날 잡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되다.
세엣. 장비발 두 가지에 투자
조개를 잡아 담는 통으로 '다이소 음식물쓰레기통'에 3천 원만 투자해 보시라. 사이즈도 적당하거니와 물이 빠지는 이중 구조 아시죠? 해루질하는 동안에도 조개들이 이물질을 뱉어내는데, 내부 바구니 아래로 모래가 가라앉아서 해감에 큰 도움이 된다. 이튿날은 잡은 조개들을 뚜껑 폭 닫아서 오면 차에 저지레 안 하고 좋다. '해루질용 엉덩이방석'도 있으면 허리에 꿀이요.
네엣. 스텐찜기 삼발이 지참
그날 잡은 녀석들 쪄먹어 봐야지. 펜션에는 찜기가 없으니 삼발이 집에서 고이 모셔가보자구. 맛조개는 오랜 해감이 필요 없어서 잡은 날 바로 먹을 수 있다. 굽보다는 찜이 진리. 구우면 알싸한 맛 주의하시길.
세계적인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가 들려주는 <놀이터 생각>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문구이다. 손자를 둔 할아버지 놀이터 디자이너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상적인 놀이터는 손대지 않은 야생입니다.
재미없는 놀이는 일이고,
재미있는 일은 놀이입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키카보다 자연에서 노는 걸 좋아라 한다. 애미애비도 야생에 참말로 끌리는 자연파다. 우리에게 갯벌에서 어깨와 등짝이 뻐근하도록 해대는 삽질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다. 함께 놀아보실래요?
+덧마디. 봄기운이 느껴질라카기만 해봐라. 호미와 엉방은 현관 앞에 대기중이다.
이상 <해루질 개념편>입니다. 맛조개 구멍 찾기 포함 <심화편>은 2024에 만나요. 도저히 더는 못 쓰게 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라이킷+댓글 삼총사는 다음을 쓰는 에너지가 됩니다.
자연파 가족FAMILY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