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도 유난히 버겁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몸도 마음도 고단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퇴근은 매일 늦어졌고, 주인을 따르는지 몇 년간 큰 문제가 없던 차마저 말썽을 부렸다. 대부분의 사무실에 불이 다 꺼진 시간, 나는 택시를 불러 카센터로 향했다.
택시를 자주 타지는 않지만, 택시 안에서 부정적인 경험은 종종 있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밀폐된 장소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오래 대화를 나누는 일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보통 내가 택시를 타는 상황이 피곤한 때이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 더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날 만난 택시기사님과는 삼십여 분간 끊기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대화의 물꼬를 튼 건 기사님이었다.
“퇴근이 늦으셨네요?”
기사님의 물음에 푸념으로 시작한 대화는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연세가 꽤 많으셨는데도 대화하는 내내 불편함이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기사님이 경청의 달인이셨다. 본인이 모르는 이야기라고 해서 듣기 싫어하거나 넘기지 않으셨다.
덤으로 귀한 옛날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줄을 서서 공중전화를 쓰던 시절에는 꽉 찬 동전통을 수거하고, 전화기를 관리하던 직업이 있었는데 그런 직업들이 다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기사님을 핸드폰 어플로 택시를 호출하는 시대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귀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만큼 많은 풍경을 보셨을 기사님은 분명 유쾌하지 않은 사람, 어두운 풍경도 많이 보셨을 테다. 그럼에도 어린 승객에게 먼저 따스한 말을 건네주실 수 있는 마음의 깊이가 나는 아직 짐작되지 않는다. 복도 많고, 예쁜 얼굴이라는 기사님의 칭찬에 한 번 더 힘을 얻으며, 잠시나마 피로를 잊었던 30분의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쓰고 싶은 말도 많은 나는 잘 들어주고, 잘 읽어주는 사람이 마음에 남는다. 뜻밖의 담소로 깨달은 사실은 결국 말도 글도 일방이 아니라 양방이어야 의미가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다. 말하기 전에 듣고, 쓰기 전에 읽는 사람이 되어야지, 오늘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