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가족을 찾았다. 내 욕심으로 시작된 가볍디 가벼운 결정은 숨 막히게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순간 후회도 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다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기꺼이 다시 한번 너를 선택하여 모든 시간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회사 근처 복층에 집을 얻었다. 남자친구와 살림을 합치며 생활비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그러니 안정된 수입과 집도 여유가 있어지면서 다시금 똑순이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며 반려견을 데려오고 싶어졌다. 그런데 항상 반대만 하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승낙을 하더니 유기견 카페가 있다며 주말에 가자고 했다. 정말 꿈인 줄 알았다. 사실 나는 무계획에 즉흥적인 사람이라 아무 생각 없이 키우고 싶다고 졸랐는데 생각지도 못 한 부분까지 고려한 남자친구의 사려 깊은 마음에 아직도 그때의 기쁨과 행복은 잊을 수가 없다.
남자친구를 통해 처음 유기견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의 긴 여정은 이미 시작됐었던 것 같다.
유기견 파티는 입양을 기다리는 퍼피들을 모아 놓고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놀러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다면 입양신청서를 쓰고 돌아가면 심사를 통해 입양결정이 되는 절차가 있었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어떤 아이를 데려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봉사자들은 아이들의 성격과 건강상태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애교가 많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온 핑크색 옷을 입고 라떼를 닮은 크림색 아이로 결정하였다.
4개월 채 되지 않은 퍼피였지만 발이 엄청 컸고 모견이 13kg 정도로 중형견에 속한다고 했다. 똑순이도 소형견은 아니었기에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었고 뭔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나만의 반려견이 생긴다는 생각에 행복회로가 우주 끝까지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를 선택한 후 입양신청서를 쓰는데 항목이 정말 많았다. 집형태, 연봉, 재산 규모 등 생각보다 사적인 부분까지 작성했어야 했고 당시엔 나도 "유기견 입양해 주면 좋은 거 아냐? 번거롭게 심사까지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유기견 입양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았다는 것을 몸소 느꼈던 순간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아이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 미리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미디어를 통해 공부를 하고 사야 할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리길 일주일, 언제 발표 나는지 계속 전화를 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왔고 결국엔 우리보다 좋은 조건의 집으로 보내졌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뭐가 부족한데?'
'집이 작아서? 맞벌이라서? 누구보다 사랑하고 잘해줄 자신이 있는데 심사 기준이 뭔데?'
무조건 우리의 품에 안길 줄 알았던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유기견 입양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유기견은 입양하는 것이 굉장히 쉬운 줄 알았고 좋은 일을 하는데 거절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조건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불안한 요소가 많았다는 것을 봉사를 해보며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엔 심사가 까다롭고 나 자신이 부족해서 거부당했다는 느낌에 기분이 많이 속상했었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여자, 남자친구의 허락을 어떻게 받아냈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모든 유기견 홍보처를 둘러보며 우리의 운명적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파양 하겠다는 사람의 톡을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면서 우리 똑순이와 너무나도 닮은 아이의 사진을 보며 홀린 듯이 결정했다.
당장 주말에 애견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후 또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사진을 보며 만나기도 전에 '보리'라는 이름을 지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말이 오길 기다렸다. 차를 빌려 어린이대공원 근처 애견카페로 갔다. 그곳에는 20대 중반의 남자로 보이는 보호자와 사진으로 본 '봄(예전이름)'이가 있었다. 그는 봄이가 중성화를 했고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보내려고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직업상 프로젝트가 많은데 지금도 친구한테 가끔 맡기는데 앞으로도 봄이를 잘 챙겨주지 못할 것 같아서 미안해서요"
지금은 그 이유가 가당키나 했을까, 가족을 보내는데 모든 이유는 변명이다. 하지만 반려견에 대한 어떤 기준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로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모두가 성숙하지 못했던 결정이었지만 그랬기에 우리가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아직 많은 곳에서 이렇게 파양하고 입양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겠지. 나도 그랬듯이 반려견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곳을 많이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쉽게 동물을 사고팔 수 있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입양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쉽게 생각하지 않고 버려지거나 파양 되는 강아지를 줄일 수 있다면 좀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봄이는 사용하고 있던 몇 가지의 용품과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그렇게 이제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