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도 너와의 시간을 잊은 적이 없어. 부족했던 우리를 미워하진 않았었니. 원망한 적은 없어?
마지막 곁을 꼭 지켜주겠다는 약속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엄마, 아빠 마중도 해주고 언니가 갈 때까지 기다려줄래? 사랑한다는 말 꼭 해주고 싶어.
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한 무식하게 용감한 20대 여성이었다. 가끔은 직장 생활이 고됐지만 대구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부모님과 반려견 '똑순이'가 있었기에 힘이 났다. 여느 주말과 같이 대구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나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똑순이가 평소와 다르게 현관에 가만히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똑순아, 왜? 무슨 일 있어? 추워?"
무슨 일인지 다가가 물으며 쓰다듬는데 똑순이의 배가 심상치 않게 부풀어 있었다. 중성화를 하지 않고 밖을 자유롭게 다니는 똑순이가 임신을 해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사실 너무 기뻤다. 똑순이의 주니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들떴고 날이 밝자마자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임신했을까요?"
"흠...., 임신은 아니고 그냥 살이 찐 것 같습니다."
"살이 쪄서 이렇게 배만 나올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죠."
실망과 속상함이 뒤섞였다. 내가 서울에 가버려서 산책을 많이 못 하게 돼서 살이 찐 건지, 내가 무지해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많이 줬기 때문인지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똑순이에게 괜히 화풀이를 했다. 계속 주저앉는 똑순이에게 살을 빼도록 운동해야 한다고 억지로 뛰게 했다.
그게 내가 똑순이에게 한 마지막 행동이었다.
의사가 오진을 냈을 수 있다는 가정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살이 쪘다고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다음 주에 내려가면 운동장에 데려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사흘 뒤 똑순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똑순이가 너 왔다간 후로 계단도 못 올라오고 힘이 하나도 없이 있다가 오늘 갑자기 아빠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숨을 거두더라. 너를 보기 위해 견디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네. 똑순이는 잘 묻어줄 테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주변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세상이 무너질 듯이 울었다.
너의 마지막만큼은 내가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되뇌었는데 무엇을 위해 서울에 와서 너의 마지막 숨결조차 느끼지 못하게 됐을까.
마지막에 사랑했다고 고마웠다고 꼭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자책과 후회 속에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남자친구에게 너 때문이라고 소리치며 울기도 했다. 분명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상하게 부푼 배였는데 감당하기 힘들어서 거짓으로 진료를 한 건 아닐까, 병원에 따질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렇다고 죽은 똑순이가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공허한 한 달을 보내고 또 다른 가족이 생기고서야 일상생활에 다시 색깔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나를 순수하게 사랑해 주는 동물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똑순이를 잊기 위해 다른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극 ISTJ의 현실적이었던 남자친구는 책임질 수 있을 때가 아니라면 절대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며 반대를 했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여자였다.
강아지가 안된다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동물이라도 데려오겠다는 의지로 주변을 모색했고 같은 회사의 동료를 통해 골든 햄스터를 분양받게 되었다.
작고 소중한 '귤'이는 나만의 첫 가족이었다. 아주 작은 원룸에서부터 볕이 잘 드는 오피스텔, 입지가 좋고 넓은 복층 집, 현재 살고 있는 집까지 서울에서 나의 모든 집을 함께하며 같이 걸어온 아이였다. 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 이쯤에서 말을 줄이려 한다.
귤이는 짧고도 긴 시간 나의 곁에서 있었고 후에 아주 소중한 인연을 맺어주며 이별을 맞이했다. 그 인연이 나올 때 꼭 귤이를 다시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를 하며,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