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lose your eyes, Look! The reality of fear can be different than you think.
눈 감지 말고 똑바로 봐봐, 두려움의 실체는 생각보다 다를 수 있어. - 니모를 찾아서
내 품에 안긴 생명체는 눈이 흑진주처럼 까맣고 맑은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탕을 찾느라 밀가루에 코를 박고 있었는지 코만 하얀 나의 강아지는'보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아니, 되고 싶었다. 보리는 새로운 환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집을 뛰어다녔고 남자친구의 코는 서서히 딸기코로 변해갔다. 갑작스럽게 날리는 털과 각질로 인해 일시적으로 기침과 콧물이 날 수 있으니 일단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남자친구는 숨을 쉬지 못했다. 그는 새벽동안 갑자기 기도가 막힐까 걱정이 돼서 잠에 들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정말 '도대체 왜? 갑자기? 고양이, 강아지 카페에서도 아무렇지 않던 네가 왜 보리의 털에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괴로운데..."
"그런데 일시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대, 검사부터 받아보고 결정하자."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수만 가지 경우의 수와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그런데 도저히 그에게 참고 살아달라고 강요는 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괴로운 감정을 가지고 있을 남자친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저녁 청소를 했다.
살면서 이렇게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 본 적이 있었던가.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 한 톨 집안에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쓸고 닦았다. 보리는 나의 속도 모르고 내가 들고 있는 걸레를 물고 당기며 놀자는 신호를 보냈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줘....'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남자친구가 도착하기 전에 청소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하기만 했다. 원래 아이를 키우는 집이 그런 걸까, 치우는 속도보다 어질러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웰시코기의 털이란 겪어보기 전까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것이었다.
뒤돌면 털이 날리고 있었고 노력만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첫 좌절을 느꼈다.
매일 대청소를 하며 살아야 해도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나는 해내고 싶었다. 이미 내 옆에서 발을 얹히고 새근새근 잠을 청하고 있는 너를 보며 어떻게 이별을 생각할 수 있을까.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
병원 검사가 나오기 전 날, 전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 봄이를 다시 돌려보내셔야겠네요."
"네... 단순한 증상이면 참아볼 텐데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해서 고민이 많네요. 결과 나오면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리가 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결정해서 남자친구에게도 아이에게도 아픈 상처만 남긴 거면 어쩌지'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보리를 안고 30분쯤 지났을까 문을 열고 남자친구가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의사가 뭐래? 심각하대? 빨리 말해봐!"
"그게....."
"보리 보내야 해? 진짜? 약 먹으면 안 된대?"
"알레르기 아니래. 심리적 문제였을 가능성이 높대. 결과 듣고 싹 나았음(머쓱)"
오! 신이시여.
종교도 없는 내가 조상님까지 불러가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아이를 정말로 품을 수 있다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남자친구를 후드려 때렸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 장난을 친 대가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나를 안아주는 그를 향해 마치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듯이 짖는 보리를 보며 울다 웃었다.
정신을 차리고 전보호자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봄이(보리)는 우리가 책임지고 죽는 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속이 시원했다. 가슴속 응어리가 다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남자친구에게 얼른 짐을 챙겨 동물병원으로 달려가자고 했다. 지금 당장 보리를 우리의 가족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재촉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아이가 생겼다.
이름은 전보리, 웰시코기, 남자아이, 7개월, 7kg, 꼬리가 없는 파양견이었던 아이는 이제는 둘도 없는 나의 아들이다. 병원에서 등록칩 정보를 변경하고 일반 검진까지 받았다.
귀가 조금 지저분한 것을 제외하곤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근데 웰시코기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힘들 텐데..."
"왜요? 웰시코기 애들은 성격이 안 좋은가요?"
"흠.... 아니요, 에너지가 엄청나서 보호자님들이 대부분 힘들어하더라고요."
무슨 의미였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보리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산책을 다녀온 직후였음에도 장난감을 들고 왔다. 이제 우리가 가족이 된 것을 자기도 아는 걸까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활발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육아는 이제 시작이었음을 누가 나에게 미리 알려줬다면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
7개월 강아지는 아직 아기였다. 마치 걸으라고 수백 번 얘기해도 뛰어다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 같달까. 에너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느낌이었다. 지옥문은 이미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