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 같은 소리 한다. 정말 꿈꿔온 그림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알람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보리의 똥냄새가 코를 후벼 파며 강타한다. 눈도 뜨지 못 한채 배변판을 씻어두고 밤새 보리가 뜯어둔 배변패드를 정리한다.
때는 12월, 해가 뜨려면 한참 남았다. 그러나 나와 보리는 아직 어두운 동네를 좀비처럼 함께 서성인다. 찬바람이 매섭고 눈물이 날 정도였지만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지 엉덩이로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겨우 아침 산책이 힘들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천만의 말씀.
산책 후 출근을 하면 보리는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 동료를 찾는다.
"아우우우우우우~~~~~~~~ 워우~~~~~"
분리불안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30분을 서럽게 울부짖었다. 즐거운 노래를 들으며 출근을 해도 힘이 날까 하는 회사를 아이의 울음으로 시작하니 마음이 심란했다. 당장 달려가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애타고도 힘들었다. 한참을 울었을까 조용해졌다. 뒤통수만 보인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보리는 울부짖다가 무엇인가 입에 닿는 물건을 뜯다가 다시 울부짖고를 반복했다. 카메라로 비록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퇴근 후 집에 도착했을 땐 기가 막힐 정도로 집은 엉망이었다. 배변패드는 기본으로 매일 집에 눈이 내렸다. 게다가 스탠드 조명 전선을 쥐도 아닌 개가 다 갉아 뜯어먹다니, 상상도 못 했다.
그 밖에 달력, 벨트, 양말, 플라스틱 버클, 빗, 인형, 장난감 등 입에 닿는 모든 물건을 파괴하였다. 제일 충격적인 날은 소파를 뜯어 놓고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을 때다. 9월에 생일선물로 남자친구가 사준 3달밖에 쓰지 못 한 새 소파였다. 시작은 작은 구멍이었다. 하지만 이미 터진 소파는 보리에게 그저 재밌는 장난감이었으며 얼마 못 가 철제와 바닥이 드러났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발생했다. 나는 사업지원팀으로 외근이 잦은 업무였다. 그날도 점심시간이 지나 외부 업체에 이동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비친 보리는 동그란 볼을 뜯고 있었다.
'못 보던 장난감인데....?'
세상에, 코트 속에 들어 있던 인형손난로였다. 속은 천연 곡물이 들어있었지만 개가 먹어서 좋을 리가 없었다. 회사에 있었다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손과 발에 땀이 났다. 회사에 있는 동료들에게 부탁을 하려 해 봐도 다들 업무가 바빠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또 한 번 무력감을 느꼈다. 보리가 야무지게 먹고 잠드는 모습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갔다. 기력이 좋아서 소화될 수도 있지만 불안하면 구토를 시키겠다는 의사의 말에 당장 구토시켜 달라고 했다. 혹시나 내 부주의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너무 무서웠다. 수액까지 맞고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나오는 보리의 표정은 심통이 나있었다. 재밌게 놀고 산책 갈 시간인데 끌려와 고통을 받았다고 불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코트에 그런 걸 넣고 낮은 곳에 두면 어떡해"
"내 잘못이라는 거야? 나도 그걸 꺼낼 거라고 생각했겠어?"
"다음부터 그러지 말란 얘기지."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지. 나도 속상한데 꼭 그렇게 내 탓인 것처럼 얘기해야겠어?"
남자친구와도 다퉜다. 가장 속상할 사람이 나란 걸 알아채지 못했을까.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엉덩이를 흔들며 또 놀자고 하는 보리가 황당하면서 미웠다. 그리고 한편으로 너무 고마웠다. 아프지 않고 기운을 차려줘서.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보리는 분명 건강하게 자랐는데 나중에는 더 많은 걸 바라고 있는 엄마의 마음)
유튜브를 밤새도록 시청했다. 분리불안과 물건을 뜯는 강아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움 되는 내용을 정리했다. 하지만 웰시코기는 에너지가 넘쳐서 너무 당연한 행동이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더 많이 놀아주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산책을 늘려보는 것이었다. 매일 하루 4번씩 30분~1시간씩 산책을 나갔다. 출근 전, 회사 점심시간, 퇴근 후, 자기 전까지 하루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밖을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