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련사 윤이쌤 Aug 27. 2023

개쪽 상담소(3)

웰시코기란

동물은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 


좋은 호르몬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며 부족할 경우 또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분비될 경우, 모든 동물은 이상 행동이 발생된다. 또한 쾌락의 호르몬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은 언젠가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으며 일상의 행복을 잊고 살게 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항상 잊고 살며 사람을 제외한 동물에게는 적용시키지 못한다.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교육은 학대와 다름없다. 




보리와 내가 시작한 교육은 켄넬교육이다. 사실 당시에는 왜 교육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필수로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개도 이 정도는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물론 보리는 잘 해냈다. 켄넬에 들어가면 간식을 주고 반복시켰다. 켄넬에서 앉는 것도 잘했다. 


마치 나의 교육 실력이 엄청나게 높은 것만 같아 콧대가 높아졌다. 


그리고 앉아, 엎드려, 기다려, 빵야까지 일사천리로 교육이 되었다.(간식 앞에 열심히 하는 모습을 교육이라 할 수 있었을까)


"우리 보리, 천재견 아니야? 너무 잘하는데?"

"남들 다 하는 거 하는 건데 천재까진 좀 그렇지 않나?" 

"아니야, 한 번에 잘 알아듣는 게 남다른 것 같아." - T와 F의 전형적인 대화


간식을 이용해서 즐겁게 가르친 여러 가지 개인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엘리베이터를 마주하고 위치한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오는 사람들로부터 항상 소리가 발생했다. 보리는 그것이 너무나 싫었나 보다. 소리가 날 때마다 '옭옭옭옭!!!' 짖어대는데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밖에서 마주쳤던 작은 강아지들은 짖어도 애교 수준으로 귀여웠는데 우리 집 개는 짖으면 집이 흔들렸다. 울림통이 얼마나 큰지,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이 산처럼 쌓여갔다. 


"짖음 교육을 해야겠어."

"그거 뭐, 어떻게 하는 건데."

"짖을 때마다 페트병을 내려치거나 이 오리주둥이를 씌우래."

"흠... 보리가 좀 불쌍한데..."


유튜브 모채널에서 짖을 때 혐오자극을 주어 짖으면 무서운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연결시켜 짖음을 없앨 수 있다는 정보를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짖음이 멈췄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미 짖고 멈추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일관성 있게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에 2주간 진행했다. 미련한 짓이었다. 


보리는 오리주둥이가 사라지면 광란의 질주와 동시에 집의 물건을 더 뜯기 시작했고 밖의 소리에 짖으면서 도망 다녔다. 잡히면 오리주둥이를 착용하게 되니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다. 

(오리주둥이는 다른 입마개보다 입구가 작고 아이들이 입을 벌릴 수 없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습니다. 흥분할 경우 호흡이 힘들어 패닉상태나 뇌에 산소가 차단될 수 있으니 절대 사용하지 마세요)


"이제는 내 손만 보면 도망가는 것 같은데...."

"거 봐, 보리는 혼나도 잊는 앤 데 그게 통할 리가 없어."



대실패였다. 사실 이때 했던 모든 방법을 안 했다면 훨씬 관계회복이 쉬웠을 거다. 모든 문제행동이 극심 해질 때쯤 나는 대형견을 키우고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 달려갔다. 그 친구는 교육에 대해서는 자신도 많이 알지는 못 하지만 대형견이라 때때로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이 엉덩이를 많이 때리며 교육했다고 했다. 나보다 오래 키운 사람의 방법이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따라 해보기로 했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리면 혼날 때와 같이 귀를 아래로 내리고 나를 쳐다봤다. 이제 나의 말을 좀 듣는다고 생각하며 말을 안 들을 때는 엉덩이를 살짝 때렸다.(과연 말을 안 듣는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러던 어느 날 보리가 남자친구의 귀를 핥으러 달려왔다. 하지 말라고 할수록 흥분하며 입질하려 했기에 남자친구는 안된다고 소리치며 엉덩이를 때렸다. 보리가 비명을 지르며 오줌을 지렸다. 내가 때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워였던 것일까. 너무 놀란 나머지 보리는 내 품으로 달려와 몸을 떨었다. 이건 잘못됐다. 절대 이 방법으론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없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우리가 보리에게 아픔을 주고 있었구나. 행복한 시간들로 꾸며주겠다는 나의 첫 마음이 이미 변질되어 내 입맛에 맞게 너를 쉽게 바꾸려고만 하고 있었구나. 심각한 고뇌에 빠졌다. 


이미 유명하다는 전문가의 말을 다 따라 해봐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이상 없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남은 견생을 보리는 물건을 뜯고, 짖고, 울부짖으며, 산책 때는 미치광이처럼, 보호자를 물어가며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 누구도 나에게 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공부해 보기로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쪽 상담소(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