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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중지추 Dec 10. 2023

피해의식(5)

감사와 분노의 역학적 관계


우연히 <악인론>이라는 책에서 '분노일기'라는 단어를 접했다. 특이한 단어라고 생각하며 밀리에서 이 책을 쭉 읽어내려갔다. 꽤 설득력이 있는 단어다. 





       

                                      악인론저자손수현출판다산북스발매2023.02.20.


        


저자 역시 감사일기를 쓰던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다 졸업을 하고 자신만 학교에 남아 있던 시절, 회사원이 된 친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학점을 채우고 졸업을 하고 회사에서 자기 자리를 하나씩 꿰차는 자리에서 애써 친구들에게 축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애써 친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찾았다.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우정 사이에서 퍽이나 괴로웠을 것이다. 친구를 질투하는 마음은 사실 자연스운 감정이지만 우리 사회의 집단 양심은 그것을 꺼내어 이야기 하기를 금기시 하곤 한다. 그래서 더 괴롭다. 



© ilyapavlov, 출처 Unsplash



저자는 집에 돌아와서 자신의 감사일기를 펼쳤다.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 데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자! 

모닝커피가  맛있는 하루 였잖아. "


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감사일기는 내 삶에서 아무것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감사하는 삶'이라는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잔인하리만큼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의 동반자였던 감사일기는 못난 사람의 합리화 노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감사는 자기 위로와는 다르다. 

현재의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과는 다르다. 

노력하는 데 따르는 스트레스를 '워라벨'을 명분으로 삼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뒤처져도 '이럴 때일 수록 먼저 축하애 주는 게 멋진 사람이야!"라는 말도 안되는 합리화로 내면의 '너는 뭐하니?'라는 날카로운 비난을 애써 외면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날, 저자는 1년 동안 쓴 감사일기를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곤 분노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면의 경쟁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내면의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경쟁샘과 욕망에서 그냥 끝나는 게 아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것인가로 촛점을 모아야 한다. 


경쟁심과 욕망으로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로 나아갔을 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관심의 대상을 타인에게서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타인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분노를 자신의 변화시키는 출발선으로 삼는 것이다. 




© omarlopez1, 출처 Unsplash



나에게는 정말 완벽하리만치 멋진 친구가 있다. 며칠 전에 그 친구를 만나고 왔다. 부러운 것 투성이의 사람이다. 가족들도 다 번듯하게 한 자리하고 있다. 가족들이 다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인생을 잘 산다. 물론 내 친구도 젊을 시절 부터 일 잘하기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마음까지 선하다. 제기랄이다.



" 내 주위에 이렇게 착하고 이쁜 친구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이 친구는 제 주변에 있을 친구라 감사합니다. 20년 동안 우정을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 라는 감사일기를 써도 충분한 친구다. 



그 친구에게 어떤 고민이나 걱정이 있는지 누가 알랴라는 마음으로 나의 부러운 마음을 합리화 하고 싶지 않았다.이거야 말로 패배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 valentinsteph, 출처 Unsplash




분노일기를 써봤다. 

나의 욕망을 그대로 노트에 적어봤다. 

'부럽다.' 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나도 그런 가족으로 둘러쌓이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나도 정말 행복하고 싶다.' 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나도인생을 멋있게 살고 싶다.' 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나도 인생을 보란듯이 살고 싶 되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나도 유명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나도 세상에서 정말 인정받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써봤다. 


울컥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럼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중요한건 '나는' 이다. 

'너는', 또는 '가족은' 이라거나 '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었다. 


대답이 술술 나온다. 


나는 ...

나는...

나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분노에서 저절로 내가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로 관심이 모아졌다. 세상을 원망할 일이 아니다. 타인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세상이,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거였다. 질문을 바꾸니 정답이 나온다. 

그래서 시험 문제를 제대로 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정답을 찾는다. 

질문이 잘못되면 오답을 정답으로 착각하고 사는 수가 있다. 


감사일기는 물론 그 효용이 아주 많다. 

세상에 대한 감사와 타인에 대한 감사는 당연한 이야기다.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는 감사와 함께

자신의 분노와 욕망을 직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감사에서 자신에 대한 분노로 나아가고, 

자신의 눈노와 욕망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 대한 감사에서 나에 대한 분노로 나아가는 것은 종이 한장 차이다.

 세상에 대해 감사하고 타인에 대해 감사하다고 해서 나의 욕망이, 나의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옥 집에 창문은 한지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방안에 있어도 방 밖의 달빛이 은은하게 한지에 서리는게 느껴진다. 감사와 분노가 그런 관계인것 같다. 감사의 이면에는 사실 나에 대한 분노와 욕망이 서려있다.

 또 나에 대한 분노와 욕망의 내면에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감사가 서려있다. 

사람이 창 밖에 서린 달빛 만 볼 줄 알았지, 창호지 한장의 거리도 안되는 감사와 분노의 역학적 관계를 볼 줄 몰랐다. 

감사일기와 함께 분노일기를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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