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선물로 받았던 벽시계가 수명이 다 된 건지 건전지를 갈아도 며칠이 지나면 10~20분씩 늦어졌다. 결혼의 시작과 함께한 시계라 버리기 아까워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아침마다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고 시간을 계산해서 봐야 되는 번거로움 때문에 새 시계를 사고 버리려 내놓았다. 요즘 에너지 발전과 기계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는 초등학생 아들이 갑자기 저 시계를 태양열로 가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
"건전지를 대신해서 전기를 공급하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답을 주니 작년에 학급 벼룩시장에서 사 온 태양광판이 달린 손선풍기를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거기서 태양광판과 전선을 분리한다. 시계의 건전지 넣는 부분에 전기테이프를 이용해 태양광판의 전선을 양쪽으로 잇는다. 테이프 고정이 잘 안 되어 낑낑거리기를 몇 번 하더니 잠시 후에 거실창 빛이 잘 드는 곳에 올려둔다. 유리가 두꺼운 부분은 빛이 잘 안 모인다는 말과 함께 창문을 열고 방충망 앞에 세운다. 원리상으로는 시계가 움직이는 게 맞는데 '과연 될까?'라는 생각으로 기다려 봤다. 잠시 후에 보니 시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아이가 태양광판을 이용해 전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는 기쁜 순간이었다.
다음 날,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시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시간 차이가 많이 나고 있었다. 역시나 시계가 고장이구나 싶어서 아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이가 말한다. "아빠, 저 시계는 낮에만 가." 그렇구나. 밤에는 빛이 없으니 움직이지 않았구나. 간단한 건데도 아빠는 모르고 있었네.
뭔가 의미를 찾을 이유는 없지만 요즘 내가 그런 것 같다. 일에 밀려, 생활에 치여 낮에는 어떻게든 달려가고 있지만 저녁이 되면 고장 난 시계마냥 모든 것을 멈추고 퍼져있는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아침이 되면 무겁고 지친 몸을 억지로 조금씩 움직여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생생한 건전지를 넣은 새 시계처럼 움직일 순 없겠지만 밤에는 멈춰버리는, 낮에만 가는 시계 같은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