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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Aug 14. 2024

첫 유치 발치부터 마지막 유치까지

  얼마 전 지웅(가명)이가 병원에 왔다. 아직 빠지지 않은 유치 옆으로 영구치가 나오는 것 같다며 예약을 했었는데,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유치가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밑에 뿌리가 남아있는 것 같다며 엄마가 확인을 하고 싶어 했다. 충치가 잘 생기기도 하고, 아직 남아 있는 유치도 한 개 보여서 전체적으로 보는 파노라마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특별한 이상 없이 영구치는 잘 나오고 있었고, 한 개 남은 유치도 바로 밑에 영구치가 올라오고 있어서 빼도 되는 상태였다. 보호자와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마지막 남은 유치를 뽑았다.

  뽑고 나서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축하해, 지웅아. 지웅이의 어린이 치아는 다 뺐고, 이제부터는 전부 어른 치아야. 지웅이가 할아버지 될 때까지 써야 되는 거니까 양치 잘하자."

  잔뜩 겁을 먹고 있었지만 아프지 않게 빠진 유치와 이제부터는 모두 어른 치아라는 말에 아이는 거즈를 물고도 빙긋 웃으며 나갔다.   



  지웅(가명)이는 우리 병원 개원 초부터 다닌 환자이다. 세 살 때 처음 왔는데, 너무나 작고 마른 데다 충치가 많아 깜짝 놀랐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아픈 데가 있었다. 아이가 워낙 작고 성장이 더딘 데다 잘 먹지도 않으니, 아이 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저 아이가 먹기만 하면 뭐든지 주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단 것만 계속 먹게 되어 충치가 많이 생겼던 것 같다. 지웅이 엄마는 아이의 치아 상태와 치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에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너무 작고 어려서 내가 치료를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소아치과에 가서 치료하도록 권유했지만 아이 엄마가 간곡하게 부탁해서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한 사람의 환자도 아쉬운 개원초이었기도 하고, 어차피 환자가 없어서 시간도 많으니 차근차근해보자고 치료를 시작한 것도 있었다. 아이 엄마에게 괜찮을 거라고, 아이가 입안이 아프니 밥도 잘 못 먹고 불편해서 안 먹는 것이라며 치료하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조차도 아이 엄마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세 살 밖에 안 되는 지웅이는 내가 싫지 않았는지 엄마 손을 놓고는 내 손을 잡고 진료실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고(가끔 엄마와 떨어지기 싫을 때는 나에게 안겨서 들어오기도 했다), 일단 유닛체어에 앉기만 하면 잘 누워서 입도 크게 벌려주었다. 그런 모습의 아이가 예뻐서 번개맨 노래도 부르고, 옥토넛 탐험대 노래도 불러주면서 조금씩 치료를 진행했다. 느리기는 했지만 치료는 잘 진행되었고, 무사히 끝났다. 그 후로는 두세 달 간격으로 검진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치료를 진행했고, 정기적으로 불소도 바르면서 아이를 만났다. 입안에 아픈 데가 없어져서 그랬는지, 아이는 점점 더 잘 먹고 잘 커가고 있었다. 한동안 내원하지 않아서 잊고 있다가 일 년쯤 지나서 만나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키도, 덩치도 커져 있었다. "너 너무 빨리 커서 못 알아보겠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매번 지웅이가 올 때마다 부모님께 직접 설명을 드렸는데 오늘따라 정신없이 바빠서 지웅이가 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아이 부모님과도 인사하지 못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즈음 데스크 직원이 지웅이 엄마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지웅이 첫 치아 발치부터 원장님이 해주시고, 결국 마지막 유치도 빼주셨네요. 덕분에 잘 크고 있는 것 같아요. 바쁘신 것 같아서 인사 못 드리고 가지만 정말 감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라며.  

    

  거의 10년쯤 전 일이라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스스로 미화한 기억일 수도 있고, 다른 아이와 기억이 섞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 엄마의 진심 어린 인사에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하다. 오래 두고 본 어린이 환자가 이렇게 잘 커가는 것은 아이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나에게도 참 행복한 일이다. 아이가 잘 크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데 그 힘에 내가 조금이나마 보탠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아이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럴 때는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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