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치과의사 하기 싫다.
토요일, 진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어떤 할머니가 오셨다. 80세를 넘었지만 들어오실 때부터 포스가 남다르다. 데스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이 분은 100%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원 이유는 '앞니를 빼러 왔다. 원래 다니던 치과가 있는데 나이도 많고, 먹는 약도 많아서 거기서는 발치를 해 줄 수가 없단다. 그래서 다른 치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지혈제를 예방적으로 먹고 있으니까 그냥 빼면 된다. 겁도 나고 걱정도 되어서 죽겠다.'라고 차트에 쓰여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데스크 직원이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환자분이 가지고 있는 전신질환이나 먹고 있는 약에 대해 물어봐도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냥 다 괜찮다고 했다며 발치하면 된단다.
'토요일 오전 예약 환자가 있어서 기다리셔야 한다, 그러고 나서 순서대로 봐드릴 거다'라고 했더니 10분쯤 기다리다가 '진료를 봐주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 다른 데로 가련다'며 밖으로 나가셨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으니까... 10분쯤 지나서 그분이 다시 들어오셨다. 진료를 보고 가야겠단다.
계속 불평하는 소리에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예약 환자들 사이에 끼워서 진료를 시작했다. 입안을 보니 충치가 심해서 치아머리는 없고 뿌리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것마저도 다 썩어서 잇몸 아래쪽으로 들어가 있다. 쉽게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파내다시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발치하려면 어느 병원에서 무슨 약을 드시는지 확인해야 하고, 필요하면 약조절을 한 다음에 발치할 수 있다'라고 했더니, '다 괜찮다. 그냥 빼면 된다'라고 한다. '어느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냐'라고 물으니 어물어물 넘어가며 답을 해주지 않는다. '저는 환자분을 오늘 처음 보고,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무슨 약을 복용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럴 수는 없다. 게다가 원래 다니던 치과에서도 고령에 복용하는 약도 많아서 발치할 수 없다고 했는데 내가 무슨 수로 그냥 이를 빼냐'라고 했더니 '그럼 나는 계속 이러고 살아야 되냐?'라는 말과 함께 모교 이름을 들먹거리며 'OO대학교씩이나 나와서 그것도 못하냐'는 말로 비아냥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수납도 안 하고 나간다.
직원들도 나도 벙찌고, 옆에 있던 다른 환자들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도대체 뭘 어쩌라고 오는 것일까... 아이고... 진짜 치과의사 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