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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나혜옥 Sep 30. 2024

당신의 사랑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천상 여자인 엄마와 무늬만 여자인 딸

 엄마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하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쓸고 닦았다.

마음대로 쓸고 닦을 수 없는 지금의 아픈 엄마는, 창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먼지 들어온다고 창문을 항상 닫아 둔다. 먼지는 없을지 몰라도 환기가 안 된 엄마 집 공기는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런 엄마가 당신 몸을 내어 맡긴다. 올여름이 지나면서부터 엄마는 혼자 목욕하는 게 힘들어졌다. 매일 아침 변기에 앉혀서 뒷물을 해 드리고, 소변 실수할 때는 샤워를 해 드리고,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해 드린다. 오늘은 등이 가렵다는 엄마를 위해 때를 밀어드렸다. 새로 구입한 때 비누를 사용하니 목욕이 한결 수월하다.

 아기가 되어버린 엄마는 물이 조금만 따뜻해도 "물이 뜨겁다", 가렵다고 해서 때수건으로 밀어드리면 "때 밀다 껍질 다 벗겨진다" 고 투정을 부리신다. 엄마 추울까봐 화장실 문을 꼭꼭 닫고 땀을 뻘뻘 흘리고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운데, 엄마의 투정을 들으니 벌컥 짜증이 났다.

“엄마! 엄마 딸이 기운 없어서 엄마 껍질까지는 못 벗끼거든!”

그냥 꿀떡! 한 번만 참으면 되는데 화난 말을 토해 내고 말았다. 말해 놓고 나면 금방 후회가 된다. 나는 서둘러 어린 시절 엄마랑 삼 남매가 목욕탕 다녔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우리 삼 남매는 굴비 엮듯 엮여 엄마 따라 목욕탕 여탕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목욕탕에 가기 전에 남동생 둘에게 나이를 속이는 연습을 시켰다.

“아저씨가 물어보면 몇 살이라고 말하라고?!” 

남동생 둘은 엄마의 강한 어조에 어디 면접시험이라도 보러 가는 것처럼 "다섯 살!"이라고 큰소리로 반복해서 연습했다. 당시만 해도 제법 큰 남자애를 여탕에 데려오곤 했다.

 나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같은 반 남자애라도 만날가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목욕탕 입구를 무사통과한 엄마는 삼 남매를 피부가 빨개지도록 때를 벗겼다. 우리가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면 등짝을 맞았다.

"안 그러면 때가 안 빠지는 걸 어떡해?! 조금만 참아, 다했다. 아이고, 엄마도 힘들어 죽겄다." 

50년 전에는 목욕탕 가는 게 연례행사였다. 설 명절, 추석 명절 밑이나 되어서야 목욕탕에 갔다.

평소에는 집에서 큰 고무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부엌 아궁이 앞에서 목욕을 했다. 지금도 어렴풋이 김이 모락모락 나던 빨간 고무대야의 목욕물이 생각난다.

나는 지금도 김장배추를 절여 놓은 큰 고무대야를 보면 그때 그 시절 목욕통으로 썼던 대야가 생각나 웃음 짓는다.

50년 전 젊은 엄마는 삼 남매 목욕 시키고, 당신 목욕하고, 입고 갔던 속옷까지 빨아도 기운이 남았었다. 그랬던 엄마가 이제는 딸의 처분만 바라고 있다. 

목욕 시간이 길어지면 엄마 힘들 생각에 속도를 낸다.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드리면 "살살해라, 머리카락 다 빠진다.", 온몸에 바디 로션을 발라 드리면 "끈적거린다, 조금 발라", 까다로운 엄마는 당신 딸이 힘들던지 말던지 안중에도 없이 계속 주문을 한다.

엄마의 까다로운 주문에 내 마음은 뾰족해지고, 추억에 젖었던 시간은 현실로 돌아왔다.

 "엄마 이 바디로션은 끈적거리지 않아, 엄마니까 해주지, 시어머니면 바디로션 안 발라 드려.”

퉁명스런 말투에 엄마는 “시어머니면 더 잘해드려야지!” 야단을 치신다.

30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내가 목욕을 시켜드렸다. 중풍으로 2년 자리보전 하셔서 대소변을 받아냈다. 그때는 애닲음보다 의무감이 커서 지금처럼 감정싸움을 하지 않았다. 

처음 엄마가 아팠을 때는 그저 불쌍한 마음에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하다가, 5년이 지나니 긴병에 효자 없다고, 나도 지쳐서 말이 곱게 안 나간다.

 "엄마 손톱 깎아야 하니까 쇼파에 앉아요."

힘든 목욕이 끝난 뒤 엄마는 화장실에서 나가셨다. 뒷정리하고 식탁에 아침밥까지 차렸는데도 엄마는 안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목욕해서 손톱이 불었을 때 깎아야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할 텐데 엄마는 뭘 하고 계신걸까.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눈썹 그리는 엄마의 떨리는 손이 보인다. 엄마는 눈썹 문신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떨리는 손으로 마음에 들 때까지 그리고 또 그리신다. 

”내 눈썹 짝짝이 아니냐?“

”에휴, 괜찮아요, 괜찮아, 도대체 엄마 눈썹을 누가 본다고?!“

하긴 주간 보호 다니실 때는 팔이 아파서 밥그릇 하나도 못 닦는다는 엄마는 아침마다 머리에 구르프를 말고, 드라이를 하고 스프레이를 듬뿍 뿌렸다.

숨차하는 엄마에게 스프레이가 나쁘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엄마는 꿋꿋하게 뿌렸고, 상표까지 정해주며 사 오라고 했다. 눈썹 문신은 커녕 화장도 안 하는 나는, 외모에만 신경 쓰는 엄마가 싫었다.

움직이기 싫다고 걷는 연습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 엄마는 늘 거울만 들여다본다. 하루 종일 집에 계시는 엄마는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걸까

여든여섯의 엄마는 아파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여자다. 천상여자인 엄마와 무늬만 여자인 딸,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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