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이다. 공간이나 돈은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 않아서 어떤 이는 부족하게 느끼고, 어떤 이는 충분해도 늘 비교의 대상이 된다. 더 큰 아파트와 더 큰 자동차를 갖고 싶고 더 많은 돈과 부를 누리고 싶은 것은 공평하지 않은 자원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격차와 계층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만큼은 모든 이들에게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지도 모른다.
일요일이 왔다. 내일이면 다음주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다음 주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나열이 되었다. 다음 주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요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요일 24시간 중 몇 시간을 쪼개서 다음 주에 추가로 필요할 것 같은 시간을 당겨 써야 다음주가 평탄하게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일요일 오전부터 일 하러 사무실에 가야겠다 다짐을 했다. 10시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창 밖을 보아하니 하늘이 파랗다. 쨍한 햇빛이 봄날의 연둣빛에 반사되어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옅은 감정이 깨어났다. 여유롭게 햇살을 쬐며 아무런 걱정과 고민 없이 내 시간을 나에게 쓰고 싶어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에 일이라니. 다음 주에 벌어질 일들은 다음 주라는 시간 안에서 꾹꾹 눌러써 보기로 하자는 마음으로 나는 옅은 마음의 소리를 따라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항상 그렇지 않았던가.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던 일들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온갖 집중력을 발휘하여 해내지 않았던가. 그간의 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무한한 잠재력은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발휘되는 법 이려니.
차를 타고 자연을 향해 무작정 밟았다. 고속도로 IC를 지나 더 멀리 갈 때마다 순간적으로 너무 멀리 가는 것은 아닌가? 가까운 곳에서 적당히 콧바람을 쐬고 일찍 돌아가서 저녁때 3시간이라도 일을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더 멀리 떠나가야만 미래에 묶여 버린 오늘의 시간들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더 멀리 가기 위해 브레이크가 아닌 엑셀을 선택했다. 짙은 마음은 브레이크를 밟기 일쑤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이렇게 될 텐데, 하는 불안과 두려움들은 현재의 안전지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시간가량을 가니 충청북도 진천군에 닿았다. 아파트가 만들어 내는 짙은 그림자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 내는 옅은 그림자들뿐인 밭두렁에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어느 북 카페에 도착했다. 요즈음에는 콘셉트만 북 카페인 곳이 많지만, 그중에도 도서관 같이 수다를 떨 수 없도록 친절하게 ‘이곳은 책을 읽는 공간입니다. 대화를 나누실 분들은 본관을 이용해 주세요.’와 같이 수다 전용 공간과 독서의 공간을 분리해 놓은 카페들이 종종 있다. 내가 도착한 그곳도 독서의 공간을 별관으로 분리해 둔 곳이었다. 나도 읽고 있던 책을 한 권 들고 가기는 했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큐레이션 해 놓은 책들을 둘러보고, 내가 평소에 손이 가지 않았던 책들을 접하는 것이 우연 같은 운명적인 책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내가 들고 왔던 책은 옆에다 두고 세 권의 책을 집어서 자리를 잡았다. 눈이 부시던 봄날 따스한 창 밖이 어둠으로 뒤바뀌는 줄도 모르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책에 흠뻑 빠져 들었다. 나는 마땅히 오늘의 내가 누려야 할 오늘의 시간을 - 미래를 위해 당겨 쓰지 않고 – 누린 것이다. 옅은 기억이 되살아 났다. 20대에 주말이면 아침부터 도서관 또는 카페로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었던 그때가 내가 느꼈었던 감정은 철들지 않은 흥분이었다. 철이 들면 들수록 삶은 넋 놓고 즐기는 놀이터에서 이겨내야만 하는 전쟁터로 변화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인생이 놀이터라고 생각하라고 하기보다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하는 걸까? 게임은 놀이터와 전쟁터가 결합된 것이 아니던가. 그저 놀이터에서 모래성 쌓고 소꿉장난 하다가 지루하면 미끄럼틀 타고 시소 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대포든 총이든 활이든 손에 잡히는 무기로 나를 지켜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니 놀이로 즐기는 전쟁인 ‘게임’을 인생에 빗대어 ‘게임처럼 인생을 살아라.’라는 말이 철든 어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인지도. 어른이 되면 놀이터에서 놀듯이 산다고 하면 철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적어도 게임하듯 살아야 한다는데 나는 사무실을 놀이터라 부르고 있다. 게임 터라 불러야 하나 싶다.
나는 그렇게 어둑한 일요일 밤까지 오늘의 나에게 오늘을 썼고, 다음 주에 일들은 빠듯했지만 역시나 주어진 시간에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집중력으로 꽉꽉 채워서 할 일을 해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집중력이 해낸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시간을 당겨 쓰지 않았던 일요일의 내가 나에게 고맙다는 표시의 대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는 에너지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서 쓰인 만큼 발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불어, 긍정적으로 쓰인 에너지는 긍정적으로 발산되고, 부정적으로 쓰인 에너지는 부정적으로 발산된다. 긍정은 긍정으로 채워지고, 부정은 부정으로 채워져야 0의 자리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자원을 나는 오늘의 나에게 사용했을까? 오늘의 내가 행복하면, 내일의 나도 행복할 것이다. 미래의 나는 쌓여가는 오늘의 나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실제 시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들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들 속에 있는 불가지론적인 과거들, 우리를 둘러싼 그것들이다.”
_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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