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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s I am May 16. 2024

07 마지막 이별이 될 줄 몰랐던 이별


살다 보면 소중했던 사람들이 먼저 이 생을 떠나 버리는 것을 겪게 된다. 아직까지 그러한 경험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이 죽음의 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의학적인 만능 기술이나 제도가 생기지 않는 한 나는 나의 죽음도 어떤 이의 죽음도 막을 수가 없다. 소중한 사람들이 먼저 떠나는 것은 적잖음 아픔을 가져다준다. 사람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고, 먼저 떠나간 자와 나와의 관계와 기억이 짙은 지 또는 옅은 지에 따라서도 아픔의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짙은 슬픔이 여러 번 있어 왔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고인을 떠올리면 그들과 나누었던 마지막 말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슬픔 속으로 금세 잠식되어 버린다. 


오늘은 엄마가 아침부터 스페인 출신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를 틀어 놓으셨다. 나에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은 아빠가 줄곧 치셨던 잊혀지지 않는 짙은 기억 중에 하나이다. 아빠는 2014년 이 생에서 먼저 떠나셨다. 재능이 많으셨던 아빠는 하고 싶은 것들을 주저 없이 하시면서 당신으로만 보면 너무 멋진 삶을 살고 가셨다. 나는 아빠가 이 시대를 살고 계셨다면 요즘 10대들의 꿈인 파워 유튜버가 되셨을 것 같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아빠는 자식들도 하지 못하는 유튜버가 되셨을 텐데. 엄마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를 틀어 놓고는 “아빠가 이 음악 연주하시는 것을 보고 뿅 가서 결혼했잖아. 나도 미쳤지. 이 연주 하나에 뿅 가 가지고. 결혼하고 나서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빠의 연주를 보고는 친구들도 뿅 갔더라니깐!”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을까? 궁금하였었는데, 오늘 에서야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남녀의 첫 끌림은 단순 미묘하다. 손짓 하나, 눈짓 하나, 따듯한 말 한마디, 저음의 목소리 등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찰나의 끌림 속에서 운명은 시작되는 것이다. 복잡한 끌림은 금세 이성을 찾아서 흩어져 버리는데, 단순한 끌림은 강렬한 쏠림으로 전환되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홀딱 반하게 만들어 주변의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는 이성의 기능을 무력화시켜 버린다. 엄마와 아빠도 그러했던 것이었구나. 


나와 남동생은 8살 나이차가 있다. 남동생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태어났다. 지금까지는 동생에게도 나와 같은 기억이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동생에게 “너는 아빠가 이 연주하는 것 기억나?”라고 물으니 동생은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때서야 옅은 기억을 헤집어 보니, 아빠는 어느 날부터 인가 기타를 그만 치 시겠다면서 방구석에 세워 두기만 하셨었는 데, 그게 동생이 태어난 시점이었었나 보다. 나의 기억에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를 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여럿 기억에 남아 있다. 오늘은 옅어져 갔던 기억들이 휘몰아치듯 툭! 하고 튀어나와서 나도 모르게 통곡을 하며 “아빠………”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기억에 있는 멋진 모습의 아빠가 남동생의 기억에는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면서,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은 아빠의 연주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면서, 그렇게 멋있었던 아빠에게 “아빠 멋있어.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감정적적으로 차갑게만 굴던 그 당시에 나의 모습이 떠올라 아빠에게 죄송한 마음과, 사십이 넘어서야 아빠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서. 여러 가지 짙고 옅은 기억과 감정들이 폭발하여 눈물을 쏟아부었다. 아빠의 장례식 때에도 시원하게 불러 보지 못했던 “아빠………”를 이제 와서야 목 놓아 불러 보다니. 어쩌면 아빠에 대한 미움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사랑의 감정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보다. 눈물을 퍼부으면서 아빠가 사무치게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짙은 기억이 옅은 기억과 화해를 한 순간이었다. 아빠에 대한 미움이 지금까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던 짙은 감정이었다면, 아빠에 대한 사랑은 옅은 감정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아빠를 이해할 나이가 되어 보니 미움을 만들어 냈었던 짙은 기억들은 옅어졌고, 오히려 사랑을 만들어 냈던 옅은 기억들은 짙어졌다. 결국, 내가 일찍이 알아차려야 했던 감정은 짙은 감정에 짓눌려 모른 척하고 싶었던 옅은 감정에 있었다는 것을.


생텍쥐 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말을 오래도록 대뇌였었다. 아무리 이곳저곳에 대입을 해서 해석해 보려고 해도 정확하게는 와닿지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은 무엇이길래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은 짙은 기억들로부터 생겨난 짙은 감정들일 수밖에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얕은 기억들로부터 생겨난 얕은 감정들인데, 짙은 기억이 만들어 낸 격렬한 파동이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가치의 옅은 기억들을 묵살시켜 버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과 마지막 이별이 언제 올 줄 모르지만, 짙은 기억과 옅은 기억의 화해를 마지막 이별이 오기 전에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화해를 해야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진심, 사랑 같은 것들을.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아 진다.”

_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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