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 am as I am May 21. 2024

12 나부터 먼저 챙길게요.


아이폰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건강’ 애플리케이션에 보면 감정 또는 기분 기록을 하는 기능이 있다. 알림을 켜두면 내가 지정한 시간에 “지금 감정 또는 기분을 기록해 주세요.”라고 알림이 온다. 나는 되도록이면 기록을 하려고 한다. 매우 단순한 기록이다. 감정 또는 기분의 좋고 나쁨의 척도와 기분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을 선별하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을 선택하면 끝이다. 선택지도 그리 많지는 않아서 기본적인 감정 체크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 감정을 하루에 두 번 체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 치우쳐져 있는 짙은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아! 내가 지금 화가 나 있었네?”라면서 딱히 화를 낼 것도 아닌 것에 화가 나 있는 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0 제로의 상태로 자리를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0 제로의 상태가 아닌 경우 아픔의 고통이 열이 나거나 쿡쿡 찌르는 고통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방식으로 든 증상을 알아차리기가 수월하다. 반면에, 정신적으로 0 제로의 상태가 아닌 경우 평소와 다르게 조금 기분이 다운되거나, 괜한 짜증이 올라와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걱정이나 불안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거나, 의욕이 생기지 않는 증상들은 별스럽지 않게 지나치기가 쉽다. 나는 육체의 건강보다 정신 건강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기쁨보다 슬픔을 상대적으로 깊이 느끼는 감수성이 짙은 성향의 사람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을 수다 떨듯이 훌훌 털어 버리듯 이야기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해서 내 안에서 나 혼자 처리해 버리는 감정들이 많다. 가끔씩은 감정 처리 회로에서 너무 많은 감정들을 처리하려다 보니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러한 날들이 길어지고 깊어지면 드라이브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잠을 잔다. 혼자서 도저히 감정 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는 심리 상담소를 찾아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감정의 원인을 찾고, 0 제로의 상태를 가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살짝 종이에 베이면 집에 구비해 둔 대일밴드와 마데카솔로 바르면 되지만, 상처가 커서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하듯이 정신의 상처도 똑같다. 살짝 스쳐 지나가는 상처라면 흔히들 말하듯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상처가 오래 짙어지고 깊어져서 감정 처리 회로가 엉키어 0 제로의 상태에서 너무 멀어져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면 심리 상담소나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스스로의 주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고 있으면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즐기면서 안전하고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듯이, 셀프 회복이 가능한 감정 처리량을 알고 있으면 유용하다. 살면서 주량만큼이나 감정 처리량을 알고 지내면 좋다. 불필요한 고통의 회로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확률이 적어지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잉여 자원이 충분히 생겨나 삶이 둥글둥글하게 옅어진다. 나는 짙고 뾰족한 것들을 경계한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들은 지난 과거 경험과 짙은 기억들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들이다. 만약, 우리가 겪어온 과거 경험과 짙은 기억들을 무의식에서 선별적으로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의학 기술이 있다면 현재 느끼고 있는 불안, 두려움, 죄책감 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그러한 기술은 없으니 의식적으로 우리는 현재의 감정을 돌보며, 과거 경험과 짙은 기억들에게 힘들었구나. 아팠구나. 괜찮아. 지금은 그때와 달라. 아팠던 과거 경험과 짙은 기억들 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이겨내고 지금에 와있는 너는 대단해! 멋있어! 라며 자기 위로와 자기 인정의 시간을 보내 보자.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으로 교육을 받아왔 음에도,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며 성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남들을 위로하고 남들을 인정하는 것에는 후한 편이다. 남들처럼 자신에게도 아픔과 상처가 있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이라는 시간을 잘 채워보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작은 위로와 작은 인정에도 지나치게 짜다. 뒤늦지만 이제야 나는 자기 위로와 자기 인정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반드시 남들이 인정할만한 성공이나 부가 따라와야만 위로와 인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조건 없이도 탄생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존재로서 위로받고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생이란 난이도 하의 색깔 맞추기와 같은 캐주얼 게임이 아니라 그만두고 싶다고 종료해 버릴 수 있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의 게임의 장에 들어온 이상 우리는 위로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나부터 먼저 위로하고 인정하고, 남은 잉여 에너지가 있을 때 남들을 위로하고 남들을 인정하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를 위로하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들을 위로하고 인정하는 것은 위선이고 거짓이며 어떻게 든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관계적인 결핍의 증상일 뿐이다. 나도 타인도 동일하게 생의 게임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이다. 나도 생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네가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려 들지 않더라도, 너는 생을 믿고 있다. 너에게 있어서는 목숨을 끊으려는 이 시도까지도 생 그 자체의 일부인 것이다. 그것은 너의 정신과 생명력이 너에게 시험해 본 새로운 뉘앙스며 기습이며 깊고 흥미 있는 경험인 것이다.”

_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_


#나는나인데 #IamasIam #LightyourLight #감정관리 #정신 #건강

작가의 이전글 11 술 당긴다. 술 한잔 할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