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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s I am May 31. 2024

21 결혼식의 형식을 따르기보단 진정한 사랑식이 되기를


30 초반. 너도 나도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하면 '결혼'이라는 주제를 나누었던 때가 있었다. 대화의 멤버 중 한 명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고 다른 한 명이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더욱이 '결혼'에 대한 얘기는 몇 시간이고 끝없이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주제였던 것 같다. 스드메라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 나는 대화의 바깥에 있었다. 대화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호응은 해주면서도 생각은 먼 산에 있었다.


나는 결혼식이 싫었다. 대학교 때 결혼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결혼식장 알바가 라인이 없으면 들어가기 힘들다고 했는데 친구가 결혼식장에 잘 아는 친한 언니가 있어서 나를 데리고 가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20년 전) 1시간에 5만 원을 줄 정도로 시간당 아르바이트비가 꽤나 높았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손님들을 안내하고 착석시키고 결혼식이 시작되면 음악에 맞춰 신부 입장이 되도록 돕고 양측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과정과 축하의 말씀이 잘 진행되도록 돕는 것이었다. 결혼식은 부산한 가운데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한 팀의 예식이 끝나고 재빠르게 다른 팀으로 변경되었다. 2팀을 뛰면 2-3시간 일하고 1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꽤나 괜찮은 알바였었다. 그때 수많은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식’ 이 주는 헛된 환상은 사라졌던 것 같다. 이 짧고 부산한 식을 치르겠다고 몇 개월을 준비하다니... 보면서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했다.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식'이라는 행사가 주는 의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둘 만의 축복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야 하는 이유가 뭘 까? 생각했었다.


어제는 지인이 결혼을 한다며 링크를 하나 보내 주셨다. 흔한 모바일 청첩장도 아닌 블로그 같은 페이지 URL 링크에 별다른 디자인도 없는 사진 한 장과 그 밑에 적힌 글귀가 다였다. 그것이 초대장이었다. '결혼한다. 축하는 받고 싶어서 파티를 준비했다. 둘 중 하나가 이런 행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아무것도 준비 없이, 특별한 순서도, 상징적인 의미의 절차도 모두 생략했다. 편하게 와서 핑거푸드 먹고 가셔라.' 하면서 구글 설문조사 링크를 붙여서 참석 여부와 참석 시간을 받고 있었다. 10년 전 친한 친구가 영국인이랑 결혼을 하였다. 한국식의 '식' 문화 없이 파티 형태로 진행하였었는데, 그때 나는 그 결혼 파티가 참 인상에 남았었다. 사회자도 주례도 없이 신부 입장도 없이 신랑 신부나 손님이나 동등하게 삶의 무대 위에서 함께 즐겼다. 손님들 역시 무대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식'의 문화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기존의 결혼식이라는 것이 참 오래된 문화이지 않은가? '딸을 시집보낸다'는 것이 '남의 집 사람이 된다' 라며 시집을 가면 이제 더 이상 딸은 우리 집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시절에나 신부입장을 통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떠나보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퍼포먼스를 이행하고 가장 이쁘고 화려하게 보내려고 축하해 주다가 눈물바다가 되고 마는…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인식이나 문화가 필요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왜 신부입장을 해야 하며 부모님들의 행사가 되어야 하는지. 뭐… 남들 다 하는 정해진 절차에 괜한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결혼 시장에서 먹고사는 비즈니스도 많고 규모도 크니 그들의 영위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유지되어야 하는 산업 섹터일 수도 있겠다 싶다. 단지, 내가 선호하지 않기에 또는 적응하지 못해서 ‘식’ 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질 뿐이다. 요즘에는 그나마 예전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절차가 사라지고 변화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종종 보인다. 주례도 없고 사회자도 없고 신부입장도 없고 양가 부모님들이 손님들 앞자리에 나란히 앉기도 하고 말이다. 선택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문화인가. 무엇을 따를지 남들의 방식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어제 받은 초대장 같은 블로그 페이지 내 문구 중에 '둘 중 하나가 이러한 행사에 적응하지 못해서'라는 말이 꽤나 괜찮게 느껴졌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다수가 하는 방식에 모두가 반드시 적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 적응해도 적응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적응하지 못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보편적인 프레임을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둘만의 이벤트를 둘만의 스타일로 즐기는 신랑과 신부 모두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결혼식은 사회가 정해 놓은 형식에 불과하며, 진정한 행복과는 무관하다. 엘리자베스는 결혼의 형식보다 자신의 감정과 자유를 중요시 여겼다. 그녀는 사회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_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_


#나는나인데 #IamasIam #LightyourLight #결혼식 #고정관념 #형식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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