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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Feb 04. 2024

역사는 반복된다

오건영의 <위기의 역사>를 읽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만든 사람은 사기꾼이야." 

금융회사에서 일했던 K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이야기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함께 많이 들은 파생상품 이름이었는데, 그걸 만든 사람이 왜 사기꾼인지 당시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아는 체하고 싶어 심각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지금, 그런 경제 지식과 역사에 무지한 것은 스스로 돌아봤을 때 창피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꾸준히 나오던 월급이 끊긴 지금은 내 삶을 지탱해 줄 돈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작년 말, 에일졸라의 <돈>을 보면서 생긴 다양한 질문들을 남자친구에게 퍼붓다시피 했었다. 폭풍 같은 질문에 지치지도 않고 열의를 다해 답해주던 그가 갑자기 경제 관련 책들을 사주기 시작했다. 그중 그간 나의 무지함에서 오던 답답함을 싹싹 청소해 주는 책을 발견했고, 나는 그것을 아주 천천히 탐독했다. 책은 매우 친절하고 설명과 예시는 풍부했지만, 내 무지는 젖은 낙엽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어 여러 번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간을 이 책을 늘 끼고 살았더니, 어느 순간 4가지 경제 위기의 원인과 결과, 노력과 해결과정들이 스며들듯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낙엽들을 조금씩 치워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경제 관련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읽던 이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 책은 오견영의 <위기의 역사>이다. 


이 책에는 총 4개의 경제 위기가 소개된다. 그 위기를 불러온 원인과 상황, 그리고 그 안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편향적 시각과 연준 및 정부의 실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과 과정을 정말 이해하기 쉽게 찬찬히 소개해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뉴스에서 보던 '금 모으기 운동'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빠의 주식투자가 닷컴 버블붕괴와 함께 폭망 했던 과거의 아픈 추억을 곱씹을 수 있었다. 대학생 때 철없이 갔던 유럽여행의 환율이 미친 듯이 비쌌던 기억이 떠올랐고, 텔레비전에서 경제뉴스 분위기가 안 좋을 때마다 현금이 최고야라고 했던 주변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긴 시간을 한 권의 책에 압축해 두었으니,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신이라도 된 기분으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반복적인 확증편향과 바보 같은 결정들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일부 지도층 (예를 들어 연준과 연준 의장)의 말 한마디와 뉘앙스로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며 이미 지난 일임에도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휘청거림에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붕괴가 따라왔을 것이고, 시간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삶을 포기한 비극들도 숨어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랜 비극 속에서 인간은 미래를 쉬이 낙관하기 어렵고, 형편이 나아지고 나면 과거를 기억하며 나쁜 미래를 예측하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어리석음을 증명하고 있다. 늘 역사는 비슷비슷하게 반복되고, 지금 일어나는 일도 어딘지 모르겠지만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왜 그런 실수를 반복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화를 냈던 나 또한 매일 매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왜 그랬을지 원인을 살펴보고 기록하며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주다 보면 같은 실수라도 좀 더 빠르게 회복하거나, 어느 순간에는 실수를 좀 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에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최근 회사를 퇴사한 J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잠깐의 휴식 후 이직을 할 그녀에게, 문학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이 경제 역사책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경제에 대해 나보다는 좀 덜 무지하고, 그래서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에 돈이 문제가 되지 않게, 위기의 역사를 보며 그녀의 시야가 더 넓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선물했었다. 책장에 꽂힌 이 책에 언젠가는 눈길이 닿아 '심심한데 한번 읽어볼까' 하고 열어본 그때, 마법처럼 그 시대로 끌려가 세계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앞으로 남은 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생각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소원해지지 않고, 같이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예술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100자 평>

IMF, 2008 금융위기가 뭔지? 연준의 금리 조정이 왜 그리 중요한지? 이 질문의 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세요. 재치있고 친절한 설명에 경제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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