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란 Jan 28. 2024

음악으로 치유하고 추억하고

신년음악회 '바로크의 영광'을 보고

책을 볼 때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숨도 못 쉬고 책장을 넘겨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한 챕터, 한 이야기가 끝나면 숨을 몰아쉬게 되는데, 음악도 그럴 때가 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경험은 영화 <파리넬리>를 볼 때였다. 거세 가수 카스트라토가 어색해 보이는 하얀색 분칠을 하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미성으로 '울게 하소서'를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형에 의해 거세가 되어 카스트라토로 살아가게 된 그의 슬픈 이야기에 너무 감정을 몰입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음악 자체가 주는 벅참, 그런 것이 그날 나에게 처음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편안하고 느슨한 상태로 듣기에 하프시코드(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전 독주 및 합주 연주 악기)는 너무 경쾌하고 날카로웠고, 멜로디는 슬펐으며, 파리넬리의 호흡은 숨을 편히 쉬기 어렵게 나를 몰아세웠었다. 그 음악들이 너무 좋아 OST 시디를 사고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그 음악들도 시간이 흐르자 다른 음악들과 시간들에 켜켜이 묻혀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라디오를 켜두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였다. (시디와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고 안테나가 달렸으며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방송을 찾던 것으로, 지금은 가정집에서 쉬이 찾기 힘든 그 옛날 아날로그 가전이었다) 아마 고2나 고3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바로 잠들기가 아쉬워 늘 머리맡에 둔 라디오로 새벽방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울게 하소서'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잠이 살포시 깼었다. 캄캄한 밤이었고 혼자 방에 누워있었고 적막한 밤공기를 가르며 어린 시절 숨 막히는 감동을 줬던 그 곡이 들리자, 나는 나도 모르게 누운 채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감수성이 예민한 때이기도 했고, 입시 스트레스에 지쳐서 그랬겠지만, 그날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곡은 나를 감싸 안았고,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다. 아마도 그래서인 듯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헨델과 바흐의 바로크음악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때의 기분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해가 바뀌고 서울 필과 부천 필의 2024년 연간 프로그램이 확정되었는지를 뒤적거리다 부천아트센터에서 신년음악회 <바로크의 영광> 공연 소식을 발견했다. 그저 바로크 곡을 실황으로 듣고 싶어서 갔었는데, 좋은 음악들을 들은 것은 물론 보물 같은 팀도 발견했다. 바로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연주팀이었다. 17세기 바로크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팀이었는데, 팀파니는 실제 17세기의 악기였고,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는 거트현이라는 양창자를 이용해 만든 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트럼펫은 음높이 조절을 도와주는 벤트 홀이 없었고, 오보에는 정말 목관악기(나무로 된 관악기)였다.


하프시코드는 개구쟁이처럼 명랑한 매력을 뽐냈고, 바이올린은 우리가 늘 듣는 소리에서 날카로움이 쏙 빠져 부드러움만 남은 그 목소리로 전체 분위기를 리드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 울림은 더욱 부드러웠고, 벤트 홀이 없는 트럼펫의 연주는 그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 날것이었다. 그 음악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면서 안정적이었냐라고 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더 맘에 들었다. 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악기들의 저마다 개성 넘치는 소리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동그래졌다. 만일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뽀샤시하게 필터처리가 되었다거나, 밤하늘의 오로라처럼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았다. 만일 먹는 것과 비교한다면 두 번째 우린 녹차 같은 느낌? 날카롭고 거친 것들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뭉근하게 진한 맛이 올라오는 그런 맛이랄까.


귀를 바짝 세워 현의 떨림, 관악기의 숨소리, 건반의 경쾌함을 듣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숨이 길어졌다. 요가를 할 때처럼 4~5박자만큼 들숨이 가느다랗고 조용하게 길어졌다가 날숨도 그만큼 느려졌다. 가슴속 공간에 좋은 기분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도 모르게 숨이 올라오다, 곡이 끝나고 나서 한숨을 몰아 쉬기도 했다. 원래도 좋아하던 바로크 음악을 그 시대 악기로 듣는 것은 설레는 경험이었다. 그 시대를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17세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21세기 인물이 어딘가에 숨어 음악을 조금 훔쳐 듣다 한숨과 함께 현대로 돌아온 그런 기분.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팀의 공연을 찾아 더 들어보리라 생각했다. 오늘은 비발디에서 끝났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연주하는 헨델과 바흐도 꼭 들어보고야 말테다. 그러나 이 섬세한 악기들의 연주는 수십 명의 합창단과 함께하기에는 너무 여렸다. 이번 공연처럼 카운트테너 한 명과 함께하는 협연이나, 콜레기움 무지쿰 만의 연주일 때만 들어볼 생각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귀에 맴돌았던 비발디의 곡을 찾아들었다. 바이올린의 멜로디를 잊을 수가 없어, 곡 전체에 흐르는 하프시코드의 낭창거리는 소리를 잊을 수 없어, 그 밤에도 그다음 날에도 반복해서 들었더니,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에는 그 음악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아마도 이 앓이를 한동안 지속할 듯하다. 오늘 밤에도 그 선율이 고파 이곳에 그 곡, Vivaldi의 Abbia respiro il cor (내 마음을 숨 쉬게 해 주오)를 공유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의 셜록홈즈 탄생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