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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Jan 06. 2024

한국의 셜록홈즈 탄생인가요?

정세랑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읽고

정세랑 작가의 책을 더 이상 사지 않겠다 결심했었다. 그랬었는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성북동 책보냥 (내가 좋아하는 서점이다. 겉으로 봐서는 늘 문이 닫혀있고 서점 같지 않으나, 들어서면 고양이와 친절한 사장님이 맞아주시고 양질의 고양이와 동물 관련 서적은 물론 소량의 추천서적을 발견할 수 있다)에서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다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사게 되었다. 사실 안 사겠다고 맘먹었지만 궁금했다. 그녀의 신간이.


그녀를 잘 모르면서,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한번 없고, 그녀의 책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면서, 사지 않겠다 마음먹었던 것은 너무 큰 기대 끝에 <지구에 한아뿐 >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글로 쓰기 미안하고 민망하지만, 나는 그 책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줄거리도 설정도 좋았다. 술술 읽혔다는 게 그 증거다. 그런데 뭔가 좋은 건 다 가져다 붙인듯한 캐릭터들은 왠지 불편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한아에게 끌렸다는 설정이나, 집이 생기자 자립을 위한 고아 청춘들을 지원한 이야기나, 너무 좋고 착한 설정이지만, 어린 시절 도덕책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두드러기 같은 게 올라올 것처럼 왠지 불편하고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과도 조금 비슷했다. 편성준선생님의 리뷰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수강생 중 한 명이 '혹시 맘에 안 드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 리뷰를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라고 질문했고 선생님이 '그럼 안 쓰면 되죠. 좋은 글과 영화에 대한 리뷰 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안 좋은 거까지 리뷰를 써야 할까요?'라고 답하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나는 당시 정세랑 작가의 책 리뷰를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재밌다. 말 그대로 재밌다. 어린 시절 애거사크리스티를 좋아하고 셜록홈스를 거의 다 보고, 성인이 되어서는 김전일 만화책과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살던 나로서는 재미있었다. 작가가 작정하고 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홈즈에게 왓슨박사라는 친구가 있듯 설자은에게는 인곤이라는 식객이 있고, 남장여자라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설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2권 3권이 기대된다. 아직 데뷔도 못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캐릭터와 설정을 만든 게 왠지 샘도 나고 한편으론 우리나라도 셜록홈즈가 나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기대가 되고 신이 나기도 했다.


너무 골치 아프지 않게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은 사람, 탐정소설 좋아하는 사람, 이 책이 아직은 히가시노게이고만큼 복잡해지지는 않았지만 미스터리가 좋은 사람, 책을 너무 안 읽어 죄책감이 들어 새해에는 책 좀 읽어볼까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왜 정세랑 정세랑 하는지를 이제와 조금 알 것 같다. 책장에 꽂아두고 묵혀두었던 <시선으로부터>도 읽어봐야겠다. 오늘 밤도 찰랑한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 리뷰를 쓴다. 눈이 소리 없이 소복이 쌓이는 밤, 맥주 한잔 하면서 보기 정말 딱 좋은 책이다.



<100자 평>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기나긴 밤 재미난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술 한잔과 가볍게 읽을 책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한국의 셜록홈즈 시리즈 탄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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