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한 번 읽었다. (왜 한 번이라고 하는지는 뒤에 알 수 있다) 이 책은 롤리타를 소리 내어 속삭여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롤리타를 외침으로써 끝을 맺는다. '너와 내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이것뿐이구나, 나의 롤리타'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은 이제 일반명사가 될 정도로 익숙해진 단어로, 예전에는 나보코프의 문학에서 비롯된 말인지 몰랐다.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를 읽기 전까지는. 소전서림에서 수개월 전 진행했던 책 읽기 모임에서 나보코프의 문학강의 책을 접한 후, 그가 집필한 책이 막연하게나마 궁금했던 차에 뒤늦게 이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사실 에밀졸라의 책을 사러 서점을 들렀다가, 찾던 책이 없어 대신 사게 된 책이었는데, 그런 우연이 겹쳐 내가 알고 있던 소설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알게 되었다.
<롤리타>, 이 책은 500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시와 같았다. 험버트가 처음 하숙집을 찾았던 순간을, 롤리타와 처음 만났을 때를, 롤리타가 테니스를 치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작가가 매우 정밀하게 묘사하여, 텍스트만으로도 그 장면을 상상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섬세함을 가진 것으로만 처음엔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갈 때 즈음, 롤리타에 대한 묘사와 여행한 장소 설명, 험버트의 감정 표현 등에는 그러한 묘사를 넘어 '우와'하는 놀라움을 선사하고자 하는 경지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을 판단하거나 해석하기보다는 문장이 주는, 그리고 그 문장과 결합한 나의 상상이 주는 이미지와 감정, 분위기를 인지하고자 했다. 나는 비록 시인은 아니지만,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에서 '아이의 웃음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웃음이죠. (중략) 예술에는 답이 없습니다. 리듬, 소리, 운율, 색, 춤, 맛, 그리고 시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들을 이해할 게 아니라, '감각'해야 합니다.(p.49)'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십 번 책 맨 뒤를 열어 주석을 읽어보고 다시 문장을 읽곤 했다. 나보코프는 러시아 태생이었지만,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영어로 썼고, 책 중간중간에는 아재개그 같은 언어유희가 정말 우글거리게 많았다. 기억나는 쉬운 예로는 '아이는 티켓이 무료(free)였다.'라는 문장이었는데, 이는 롤리타는 현재 전혀 자유롭지(free) 않은 상황이라는 점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그래서 '아, 내가 영어를 잘해서 원문을 읽는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혹은 '내가 문학에 통달한 사람이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나보코프의 문학강의>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소설을 쓴 작가나 쓰인 시대의 배경을 기반으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나 문학과 문장을 예술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은유한다거나 정신분석학(특히 프로이트식)에 기대어 해석하는 것 들을 거의 경멸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문학을 그 자체, 텍스트가 주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우선해서 보고자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이 문장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지를 찾아보고 이해하고 같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것은 책을 읽는 데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후반에는 여기저기 단서가 숨어있는 탐정소설을 읽은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롤리타를 탈출시킨 Q(퀼티)가 방수시계랑 무슨 관련? 남편은 또 어디서 만났던 거지? 주석에서는 분명 롤리타도 1952년에 죽었다는데, 언제? 라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그러나 나는 발견하지 못한 사건과 단서들을 다시 돌려 보는 수고로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두 번 이상 읽어야 할 책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책이 주는 교훈? 책의 목적과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저 놓친 것들을 다시 주워가며 읽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험버트험버트가 한 이야기를 따라갔다면, 이제는 나보코프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나보코프가 작가라서 서점에서 선택한 책이었다. 그러므로 프롤로그를 보고 속아 넘어가진 않았지만, 프롤로그마저 가상의 인물로 적어둔 가짜 머리말인 것을 보고 이 책에 숨겨져 있을 나보코프의 유희랄까 유머랄까 그 장치들을 놓치지 않고 다 확인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덮으면서는 천명관의 <고래>가 생각났다. 그냥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즐길 것. 어쩌면 그게 문학의 첫 번째 목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 첫 번째 목표를 너무도 멋지고 세련되고 교묘하고 즐겁게 달성하게 도와준 <롤리타>를 올해의 첫 책 리뷰로 쓰게 되어 반가웠다.
<100자 평>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놀라운 언어유희를 탐독하며 탐정소설과 같은 숨겨진 장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음란물이라는 오해는 금물! 이 책은 텍스트로 구성된 예술, 시 그 자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