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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Apr 23. 2024

글에 힘 빼기

믿고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중랑구에 있는 본따블르를 찾았다. 본따블르에서는 매월 빵이나 쿠키, 과자 같은 것을 직접 구워 지역 돌봄 센터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는데, 운 좋게 그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본따블르 선생님은 꽤 오래전 (몇 년 전일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10년은 되지 않았을까) 남자친구의 사진 선생님으로 인연을 맺어, 이제는 나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진 대신 초콜릿과 빵 만드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내용물만 바뀌었지 여전히 선생님이라는 업이 무척 어울리는 분이다. 한없이 따뜻한, 그래서 눈 옆 잔주름마저 예쁜 웃음을 보여주시다가도, "이 사진은 아니야." 혹은 "반죽을 그렇게 하면 안 돼요."라고 단호한 피드백을 주시기도 한다. 넘치든 부족하든 선생님 앞에 온 사람들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는 모습은 천상 선생님이다. 


봉사활동에 앞서 맛있게 블렌딩 된 오렌지 루이보스를 선생님이 만든 케이크와 함께 맛보았다. 함께 차를 마신 S언니는 "차 향이 여백 없이 다 채워지면서도 과하지 않아 너무 좋다."라며 전문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런가 하는 마음에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시니 오렌지의 경쾌함과 루이보스의 차분함과 묵직함이 우아하게 밸런스를 이루는 게 느껴졌다. 그냥 '맛있다'라고 생각했는데, 민트의 시원함과 과일의 달큼한 향, 알싸한 맛들이 느껴졌다. 향기를 맡을 때부터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삼키고 숨을 내쉴 때까지 그 맛은 튀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냈다. 신기했다. S언니의 말을 들은 선생님은 실제로 빈 곳을 채워가며 블렌딩을 한 것이었고, 그걸 알아줘서 너무 감격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블렌딩 한 찻잎을 봉지에 며칠 두면 그 향이 서로 스며들며 더 어우러진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S언니는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 두어야 하나 봐요. 서로 스며들어 좋은 향이 베어나도록 말이죠."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에 감탄했다. 


그러면서 우리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선생님의 첫 번째 (사진) 제자였고, 나는 그 인연으로 선생님 사진 인문학 수업을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은 본따블르를 가끔씩 찾고 있다. 좋아하는 S동생과 S언니와 함께 빵 만드는 수업을 들었고, 그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런 자리에서는 늘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기 마련인데, 우리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미숙했던가를 이야기하며 웃곤 한다. 이날 이야기의 시작은 당연하게도 남자친구의 사진이었다. 남자친구의 당시 사진은 테크닉으로는 완벽했지만, 그래서 그게 끝인,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는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을 본 선생님은 조금 매몰차게 "이런 사진은 더 할 말이 없어요. 진짜 자기 사진을 찍어오세요."라고 돌려보냈었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은 힘이 빠진 진짜 사진이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사진 너머에 이야기가 있는, 그게 궁금한 사진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사진 이야기를 하다 보니, S언니와 내가 함께 배우고 있는 가야금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가야금도 힘이 들어가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몸에 힘을 빼고 연주를 했을 때 부드러워 듣기 좋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이 축적되어야 하고, 어느 순간 몸에 힘을 빼도 소리와 리듬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비로소 성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가야금 선생님께 "어깨 힘 빼고, 배에는 힘을 주고"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S동생이 매일 즐겨하는 수영도 마찬가지다. 온몸에 힘을 주고 속도를 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힘들어진다. 몸에 힘을 빼야 자세도 자연스러워지고 비로소 더 멀리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각자의 경험과 함께 결국 모든 일은 힘을 빼야 완성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옛날 일이 생각나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과연 나의 글은 어떨까. 언젠가 박연준 시인이 진행하는 에세이 합평 워크숍을 갔을 때였다. 시인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이전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토대로 잔뜩 힘을 주어 열심히 써간 에세이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반대로 시인은 고칠 것 투성이라며, 매 문장이 아닌 매 단어마다 수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귀까지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을 꾹꾹 눌러가며 종이에 수정사항들을 받아 적었고, 반면교사를 위해 그 글을 브런치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완벽하지 않은 글이고, 좋은 글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드러내야 내가 변한다고 믿고 있으니까. 그때 내 글은 Dress-up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건 너무 많이 꾸며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나는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고,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과했다. 그러나 쓰는 기술과 경험은 부족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힘을 빼거나 내려놓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나의 글은 괜찮아졌을까? 힘이 잘 빠졌을까? 고민될 때가 많다.


얼마 전 읽은 베스트셀러의 글은 감정 없이 툭툭 내려놓듯 문장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상황이나 심리의 묘사가 절절해지기도 해서 감정의 파도가 예상치 못하게 휘몰아쳤었다. 그래서 책을 잠시 덮고 숨을 고르기도 했고, 손수건이 필요할 정도로 울컥하기도 했다. 글을 보고 감동을 받을 때면 나는 내 글이 부끄러워진다. 내 글도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여전히 쓸데없는 힘이 들어간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하는 날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도, 쓰던 글을 마무리할 수도 없게 된다. 썼던 글을 보고 또 보고,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되어,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믿고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 나의 가야금이 그랬으니까. 연습과 시간이 축적되어 내 몸에 스며들면 어느 순간 몸에 힘을 빼는 게 가능해졌으니까. 힘을 빼고도 강하게 뜯고 부드럽게 농현 하는 게 가능해졌으니까. 마찬가지로 차가 더 좋은 향이 나는 데는 어우러지고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더 멀리 오랫동안 수영을 즐기기 위해서도 온몸에 힘을 빼는 순간을 위한 연습이 필요하니까. 


계속 쓰기 위해 내 글이 부끄럽다는 하소연을 글로 쓰고 있다. 아이러니한 이 상황이 우습고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내 부끄러움도 자원화하는 용기가 있다면 계속 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는 쓰기로 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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