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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May 01. 2024

다이어트 리딩방

나의 목표는 다부진 잔근육, 납작한 배, 그리고 날다람쥐 같은 등산 체력

갑작스레 여름 같은 날씨가 지속되면서 H와 S와 나는 다이어트에 불이 붙었다. 거의 매일같이 카톡으로 오늘은 뭘 먹어서 망했다는 둥,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는 둥, 내일 술약속 있는데 큰일 났다는 둥, 유투버들은 어떻게 10킬로 이상 살을 뺄 수 있냐는 둥 살에 관한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혼자 있으면 쉬이 게을러지고 맘이 약해지니 카톡만 할게 아니라 주말에 산에 가자는 말이 나왔고, 요즘은 거의 격주로 아차산이나 인왕산 같은 곳을 오르고 있다. 다만 적당히 땀을 흘리고 좋은 공기를 마시니 식욕이 부쩍 좋아져서, 하산 후 백숙이나 돈가스, 만두전골, 삼겹살 같은 것을 체력 보강이라는 핑계로 양껏 먹고 있다는 게 문제다.


나이가 들면 사소한 욕심은 내려놓을 만도 한데,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은 점점 커지는 느낌이다. 경험이 많아지니 맛있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다이어트를 핑계로 한 끼라도 굶으면 그다음 식사 때 과식하기 일쑤다. 20대 때에는 하루이틀 단식 정도는 끄덕 없었는데, 요즘은 16시간 간헐적 단식도 쉽지 않다. 두통이 생기기도 하고, 손발이 덜덜덜 떨리며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다이어트한다고 생각하니 먹고 싶은 게 더 많아지고 식탐이 심해졌다. 내 하소연을 듣던 S언니는 "다이어트하려면 다이어트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야 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말에 매우 동의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다이어트 선언하고 나니, '저걸 먹으면 살이 찌겠지, 그럼 먹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음식을 볼 때마다 들었다. 원래 먹을 것도 아니었으면서 먹을 기회를 강제로 뺏긴 것 같은 상실감에 더 배가 고파지는 기분이 들고 서럽고 억울하면서 '먹고 싶다.'는 기분이 강렬해졌다. 음식을 실제로 볼 때만 그런 게 아니라, TV나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을 열 때마다 맛있는 음식들은 나를 유혹했고, 그럴 때마다 '먹으면 안 되니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중고등학교 동창이던 친구가 다이어트에 성공해 17킬로그램이나 감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친구는 카톡 프사를 바꿨고, 날씬한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컸던 친구가 아니었기에, 사실 나와 비슷하게 작은 키여서, 그 소식은 놀라움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나를 향한 비난과 반성으로 돌아왔다. '왜 나는 못하는 가!' 역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거였다. 유명 유투버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있던 친구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게 너무 부러웠고, 더욱 결심이 굳어졌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얼핏 봤을 때 비만이거나 건강에 문제가 될 정도로 살이 붙은 몸은 아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붙어 늘어난 살은 고민이긴 고민이다. 한번 나오니 들어갈 줄을 모르는 뱃살 때문에 식당에 앉아있다가 볼록볼록 나온 허리와 뱃살을 보고 흠칫 놀라 누가 보기 전에 가방으로 배를 가리기도 했고, 얼마 전 헐렁해서 수선해야 하나 고민하던 바지가 딱 맞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이고, 다리를 꼬고 앉으니 허벅지와 종아리 살 때문에 꼬았던 다리가 이내 풀려버렸다. 게다가 몸이 무거우니 움직이는 게 더 힘들어졌고, 갈수록 체력이 떨어져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기까지 했다. 무겁게 눈을 뜬 어느 날, 손이 퉁퉁 부어서 주먹 쥐는 게 불편하다는 걸 느낀 그날 아침,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에 가기로 했다. 힘들어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러닝머신에서도 자전거에서도 금방 내려올 수 있었고, 달리기도 하다가 좀 힘들면 그만두고 터벅터벅 걸어오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일단 시작하면 쉬이 끝낼 수 없는 것을 하기로 했다. 산은 한번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하니까. 중간에 그만두고 집으로 순간이동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예쁜 오솔길 같은 능선을 만나거나, 탁 트인 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면, 귀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 해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맛있는 점심식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일석삼조 아니 일석사조로 좋은 운동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대충 격주로 한 번씩 서울 시내 및 경기도의 산을 가고, 지난주부터는 가능하면 매일 동네 뒷산을 가고 있다. 건강앱을 열어 기록을 보니, 최근 7일 중 5일을 갔다. 지금 같은 결심과 실천력을 앞으로 몇 달만 유지한다면, 살 빼고 건강해지는 건 시간문제일 듯 싶다.


H는 다음 주 여행에 앞서 2킬로를 빨리 빼야 한다며 안달이다. 그러면서 내 다이어트 목표를 물어보는데, 그제야 알았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는 있지만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물론 지금보다 좀 더 근육이 붙고 지방이 빠진 몸이었으면 좋겠다 정도는 있지만 언제까지 몇 킬로를 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굳이 목표를 정한다면 몇 년 전 제주도에서 만났던 오름 가이드분이 내 워너비이긴 하다. 그분처럼 잔근육으로 다부지고 배가 나오지 않았으며, 산다람쥐처럼 민첩하게 산을 탈 수 있는 체력이면 좋겠다. 너무 이상적인가? 아무튼 친구와의 대화로 돌아와, 언제까지 얼마를 빼겠다는 목표가 없다고 했더니 '그럼 안 돼~ 목표가 없으면 지키기 어려워.'라고 H에게 한소리 들었다.


그러나 목표를 정하고 싶진 않다. 늘 그런 다이어트는 망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목표를 맞추려고 무리하다 보니, 금세 요요가 오기도 했고 몸에 무리가 가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지금처럼 꾸준히 산을 갈 생각이다. 눈과 비로 도저히 산을 오를 날씨가 아니라면, 동네 뒷산이라도 갈 계획이다. 그러다 보면 좋아진 체력에 뭐라도 더 잘할 수 있겠지. 무릎이 아파 그만둔 달리기도 다시 시작하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몇 달 전 본 김경일 교수의 강의 영상이 생각났다. 목표와 계획을 혼동하지 말라는 이야기. 목표를 정하면 해야 하는 일(계획)을 잘게 쪼개어하라는 것. 그래야 목표에 대해 성공과 실패로 이분화하는 게 아니라 진도와 성과를 측정할 수 있고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그래서 어떻게 하란건지 사실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이야기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몇 가지가 다른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다른 게 오히려 더 맘에 들었다. 그건 다음과 같다.

1. 목표보다 계획 (데드라인이 있는 업무가 아닌, 인생 전반에 걸쳐 해내야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2. 계획은 좋아하는 행동들로 구성 (산에 가는 걸 좋아함)

3. 계획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조금 더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는 빈도나 강도로 설정 (일주일에 3~5번, 동네 뒷산, 왕복 2시간 이내)

4. 서로 독려하는 동료나 자극제 필요 (다이어트 동료인 H와 S, 그리고 해이해질 때마다 생각나는 동창친구)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우리 카톡방은 사실 '빵을 만들러 가자'라는 이야기를 하다 만들어졌었다. 그래서 이제껏 채팅방 이름이 <사워도우 만들러 가요> 였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요즘 우리의 대화 주제와 이름이 영 맞지 않았다. 빵을 만들기는커녕, 당분간은 빵을 쳐다보지도 말고 살을 빼야 하는 처지니 말이다. 게다가 채팅방 이름만 봐도 자꾸 빵이 먹고 싶고, 빵 위에 버터를 얹고 싶고, 버터 위에 쨈이랑 햄, 치즈 같은 걸 얹고 싶어서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지금도 침이 고인다) 그래서 오늘은 단톡방 이름을 바꾸었다. <다이어트 리딩방> 이름도 바꾸었으니 이제 다이어트로 대박 날 일만 남았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걸 동네방네 알려서, 계획대로 매일 산에 가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브런치에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일 산에 가고, 쉽게 포기하지 않겠지. 뭐 그런 심산인 거다. 그러니 이제는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 참, 나에게 있어 다이어트 성공은 '잔근육으로 다부지고 배가 나오지 않으며, 산다람쥐처럼 민첩하게 산을 탈 수 있는 체력'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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