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러닝의 행복
밤새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가,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날씨가 나에게 뛸 기회를 주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따뜻한 이불 밖으로 서둘러 빠져나왔다. 파란 하늘 아래 흰 구름만 둥둥 떠 있는 걸 보니, 두 시간 안에 러닝도 하고 강아지 산책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아직 더 자고 싶은 남편과 강아지를 뒤로한 채, 뽀송하게 마른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비가 잘 오지 않는 캘리포니아에 이틀 연속 비가 내리고 나니, 나무도 집도 공기도 모두 목욕을 한 듯 반짝반짝 빛났다. 가을비가 싹 씻어낸 도로 위엔 노랗고 빨간 단풍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비 온 뒤 단풍이 깔린 거리를 내딛는 건 첫눈을 밟을 때만큼이나 마음속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신다. 시원한 공기 속에서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달리다 보니, 문득 와, 진짜 너무 행복한데? 하는 마음이 절로 솟았다.
오늘은 러닝 중간중간 멈춰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팔에 찬 폰홀더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다시 뛰는 게 번거롭긴 했지만, 아름답던 순간들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짧게 머물다 가는 가을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다면 그 정도 불편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비 때문에 집에 갇혀 있던 동네 강아지들도 모두 쏟아져 나와 거리를 신나게 산책하고 있었다. 어떤 집 앞엔 주인이 바쁜지 커다란 검은 개만 혼자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어, 혹시라도 따라올까 봐 보자마자 뒷걸음질 치며 다른 길로 뛰어갔다. 가끔 러닝을 하다 보면 큰 개가 홀로 돌아다니거나 코요테를 마주칠 때도 있어, 멀리서 보고 아파트 복도로 냅다 뛰어올라간 적도 있다. 이웃 언니는 그래서 야외 러닝을 꺼린다지만, 그런 상황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두려움보다 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면 결국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래도 장대 같은 걸 하나 들고 다닐까 고민은 꽤 자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래 살기 위해 뛰는 사람들보다는 인생을 더욱 충만하게 살기 위해 뛰는 러너들이 더 많을 거라는 문장.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맞아,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내일 더 잘 뛰기 위해 가볍고 몸에 좋은 음식을 고르게 되고, 러닝 후 BDNF가 많이 분비되어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를 듣고는, ‘지금이 기회지’ 하며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읽게 된다. 또 내일 잘 뛰려면 푹 자야 하니, 조금 더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하게 된다.
아침을 러닝으로 시작하다 보니 하루가 좋은 방향으로 선순환된다.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몸과 마음의 부기를 매일 덜어내듯 가볍게 살아간다. 그 작은 성취감들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실어주고, 하루하루를 더 알차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