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낭만 러닝

시댁에서도 러닝은 계속 된다

by stay cozy

추수감사절 이틀 동안 어머니 댁에서 지냈다. 터키는 다 먹기 부담스러워 몇 년 전부터 식구들이 먹고 싶은 메뉴를 만들어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직접 갈아 만든 콩으로 끓인 비지찌개, 뒷마당에서 바로 잘라온 부추에 치즈를 넣어 부쳐낸 부추전, 그리고 유튜브에서 강추한다며 코스트코에서 냉큼 사오신 낙지볶음밥까지 —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음식과는 다르지만 우리 방식대로 소소하고 알찬 만찬을 즐겼다.


한인타운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와 낙지볶음밥을 먹고, 후식으로는 석류를 반 갈라 톡톡 털어 먹었다. 오늘은 중고서점과 마켓을 구경하며 걸었지만, 오늘 먹은 것에 비하면 턱없이 운동량이 부족한듯 해서

소화도 시킬 겸 집에서 챙겨온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커뮤니티 안을 숫자 3 모양으로 이리저리 왕복하며 뛰었다. 멀리까지 나가 풍경이 바뀌는 러닝은 아니지만, 조용한 단지 안을 가로질러 달리다 보니 몸도 풀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자유로움도 좋았다.

이어폰도 없이 날것 그대로 뛰니, 타박타박 울리는 내 발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일정하면서도 조용하게 땅에 닿는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비가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청량한 저녁공기가 메이크업이 남아 있는 얼굴을 스치며 박하사탕처럼 시원하게 피부에 닿았다.


어제 아침엔 러닝 친구가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천천히 함께 연습해온 어머니와 오랜만에 아침 안개를 가르며 단지를 달렸다. 고관절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라 정말 천천히 뛰자고 말했는데, 열정이 넘치던 어머니는 2.5마일 내내 종종 속도를 올리셨고, 결국 저녁엔 골반이 쑤셔 마사지와 파스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큼, 의식적으로 천천히 달리는 일도 쉽지 않다.


집집마다 켜진 따뜻한 현관등은 마치 비행기 활주로의 조명처럼 내 앞길을 밝혀주는 것 같았다. 내가 뛰는 길은 레드카펫이 되고, 양옆의 빛들은 나만을 향한 플래시처럼 반짝였다. 낮 동안 복잡하고 꽉 찬 공간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이 길 위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훌훌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도 이 저녁 조깅의 기쁨을 함께 느끼셨으면 좋았을텐데.

이 고요하고 평온한 가을 저녁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달릴 수 있는 자유로움, 내쉬는 숨만큼 가벼워지는 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즐거움을 말이다.


저녁엔 가족들과 함께 유튜브로 ‘낭만러너’ 심진석의 영상을 봤다. 장비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단순함,

달리는 그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순수함,

달리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그의 모습에 우리 모두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마음속이 몽글몽글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자신만의 ‘낭만 러닝’을 품고 있을 것이다.

순수하게 뛰는 행복이 찾아오는 나만의 순간들.

나에게는 집이 아닌 다른 곳을 여행할 때도 운동복을 챙겨가서

안개낀 아침을,

낯설지만 반짝이는 밤풍경을 감상하며

조용히 뛰는 시간들이 바로 그런 낭만 러닝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