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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cozy May 13. 2024

스스로 아픔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건

영화'land' (결말이  포함돼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스크롤을 올리다 우연히 눈에 띄는 영화소개 썸네일을 보았다.

 '미국판 나 혼자 산다'란 소개글과 한적한 산속 오두막집 썸네일이 눈에 들어와서 내용을 살짝 보았다.

사고로 아들과 남편을 잃은 후 아무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말을 테라피스트에게 하고 있는 주인공의 눈빛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제대로 보고 싶다는 맘이 들었다.


내가 보는 영화플랫폼들엔  올라와 있지 않았고 유튜브무비에서  3.99달러를 내고 빌려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주인공 에디가 사고가 있은 후 아주 깊고 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오두막집으로 이사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모든 걸 잃은 눈빛으로 창밖을 보며 산을 향하는 에디는 자신을 걱정하는 여동생에게서 오는 전화에 폰도 휴지통에 던져 버린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연결돼 있던 사람들을 잃고 산속에 들어가 아무와도 연결되어 있고 싶지 않아 하는 에디는 장작 패는 것부터 밭 가꾸기 , 사냥등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추운 오두막에서 오들오들 떨며 밖에서 들리는 짐승들 소리에 잠을 설치고 도끼질을 하다가 손에 커다란 물집들도 잡힌다.

어느 날은 화장실 간사이 곰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 가지고 있던 식량들과 물건들을 전부 깨 놓고 엉망으로 해놓고 나가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그러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 겨울날 에디는 며칠 먹지도 못한 상태로 집과 연결된 밧줄을 허리에 묶어 땔감을 주으러 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정신을 잃는다.


쓰러져 있는 에디를 발견한 건 근처를 다니며 집에 연기가 피어오르는지 살피던 미구엘이었다.

미구엘은 병원에 가보길 적극 권유하지만 에디는 절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려하지 않고

그런 에디를 미구엘은 이해해 주었고 간호해 준다.


몸이 차츰 나아지게 된 에디는 마음은 고맙지만 이젠 더 이상 자기를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맘이 닫혀있는 에디에게 미구엘은 그럼 사냥하고 산속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준 후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미구엘은 에디를 데리고 다니며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조심스럽게 에디에게 가족이 있는지 묻자 에디는  있었었다는 짧은 대답만을 한다.

미구엘은 자신이 몇 년 전 아이와 아내를 잃었다는 말을 나직이 고백한다.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미구엘을 보며 놀란 눈빛을 하는 에디였지만 끝내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놓지 않는다.

에디는 어떤 날은 아들과 남편의 사진을 펼쳐놓고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다가

어떤 날은 천연 벌꿀을 찾아 미소를 지어보기도  한다. 손에 앉은 무당벌레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자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기도 한다.

또 미구엘이 가르쳐준 대로  토끼와 사슴을 사냥하며 점점  실력이 늘어난다.

미구엘은 에디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좀 더 알고싶어 하지만 에디는 그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내던 에디는 자신을 찾아와 잘 지내는지  살펴주던 미구엘이 어느새부턴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된다.

폰이 없는 에디는 직접 시내로 내려와 미구엘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가고 스스로 미구엘의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그리곤 암으로 곧 떠날 듯 누워있는 미구엘을 마주하게  된다.


세상적인 얘기는 자기에게 하지 말라는 에디의 당부에 자신의 병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미구엘.

자신의 폰에 같이 부르던 80년대 곡들이 많이 있으니 에디에게 폰을 가져가라고 한다.

자신이 죽어갈 때 살려주었던 미구엘이 이젠 이렇게 떠나려 하는 모습을 보며 에디는 눈물을 흘린다.

미구엘은 자신이 남을 돕고 명예롭게 갈 수 있어서 고맙다고 자신은 계속 줄 테니 에디는 계속 받으면 된다고 한다. 미구엘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에디는 말한다.

자신의 아들과 남편은 콘서트 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고백하듯 말하곤 미구엘의집을 떠난다.


그 후 미구엘이 준 폰으로 에디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자신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 말하기까지 에디는 얼마나 스스로 상처를  문지르고 꿰매고 있었을까.

또한 미구엘이  가족의 비극을 어떤 방식으로 치유하였을지 생각해 보면 그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극복해 나간 듯하다. 마을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고 태양열 장치를 달아주기도 하며.  

에디가 왜 자기를 도와주었냐고 하는 말에 미구엘은 덤덤히 내가 가는 길에 당신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보이는 이들을  도와주며 살다 간 미구엘. 자신이 잃은 과거 가족들에게 했던 실수와 죄책감을 이를 통해 묽게 희석시키려는 듯  덤덤히 행하는 그의 행동은 에디가 홀로 고립된 오두막에 들어온 것과 같이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유튜브에서 한 강연을 본 적이 있다. 우린 종종 큰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이제 그만하면 슬퍼하지 않을 때가 되지 않느냐는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해버리곤 한다고.

그 영상을 보며 나 또한 이제 그만 이란 분위기와 말투로 위로해 주는 척하며 더 상처를 주고 있진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미구엘이 에디에게 맞춘 세심한 배려와 재촉하지 않는 따뜻한 맘이 마치 묵묵히 바라봐주는 자연 같은 느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씨를 뿌리면 뙤약볕을 견디고 가을바람을 견뎌 튼실한 열매를 맺는 자연처럼 따뜻한 마음씨를 뿌려주면 황폐해진 마음에서도 언젠가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게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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