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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칭찬 Jul 26. 2023

손주돌봄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

소논문과 에세이의 사이에서

마치 비밀일기장을 꺼내는 듯 제 마음이 조심스럽습니다.


손주돌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논문을 위한 인터뷰였어요.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맞벌이 엄마와 할머니가 느끼는 양육경험과 양육갈등에 관한 것이었답니다.  공동양육자인 조모세대와 성인자녀세대의 조모 양육에 관한 견해들을 이해하고 학회에 발표하기 위한 논문이었지요.

논문의 초록 예시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녀를 양육하는 6명의 조모와 그들의 자녀 중 워킹맘의 딸들이었습니다. 조모와 취업모 총 12명을 인터뷰하였습니다. 면접 질문 내용은 <손자녀 양육의 동기> <조부모님들의 양육참여의 경험> <하루의 생활> <양육과정에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이었습니다.  녹음된 음성파일을 글로 전사하면서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를 분석해나갔지요.

사전계획, 인터뷰, 전사, 의미분석, 글쓰기 과정이 총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잠을 자다가도 번뜻 떠오르는 생각과 의미들이 떠오르면 모니터로 달려가 글쓰기에 집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최종편집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글을 보니 한 문장이 너무 길기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했어요. 마무리에 써야 할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가  매 문장의 끝마다 다시 쓰는 도돌이표 글쓰기의 어려움이 나타났지요. 총 270페이지의 전사 내용을 의미단위와 결과를 도출해서 10페이지 안으로 글을 적어야 했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을 모두 합쳐 30페이지의 내용으로 압축하기까지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죠.


문장 속에 의미없는 단어는 없는지, 중복된 이야기는 없는지, 쉼표와 마침표는 빠진 곳은 없는지, 오타는 없는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습니다. 완벽한 문장이어야만 심사에서 통과되는 것을 알기에 정말로 열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모니터에 빨려들어가는 나의 몸은 뻣뻣해지고 철자 하나 하나를 놓치않겠다는 저의 눈은 안구건조로 대낮에도 빨갛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저에게  글쓰기는 반드시 함축된 의미여야 고, 완성된 문장이어야 한다는 강박습관이 생겼습니다.


'다시는 쓰지 말아야지'

글쓰기와 편집 과정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투고 이메일을 보내면서, 마지막 엔터키를 오른손의 검지로 '탁' 소리나게 강력하게 눌렀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 키보드의 Enter는 저에게 커다란 행복감이었죠. 잘 저장되었는지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했습니다.학회에 투고를 하고 심사까지 한 달동안은 모든 것이 행복했었어요.  


그런데  심사 결과는 <게재불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어요. 이 힘든 걸 다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상함, 허탈함, 분노, 회피, 좌절감이 생기더군요.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은 책상앞에 앉기까지 마음가짐을 반드시 해야 했죠.


'이것만 마치고 다시는 쓰지 말아야지!'


이러한 다짐으로 다시 마음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마무리에 대한 의지가 생기더군요. 심사자의 게재불가된 이유와 연구방법과 결과에 대한 해석의 내용을 보았더니, 그 결과가 모두 맞더라구요. 한 곳에만 너무 열중하다보니 전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기나긴 의자와의 엉덩이 싸움으로 결국, 심사에 투고하여 <게재 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때의 심정은 온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죠. 조부모와 취업모에 대한 분석이 학문적인 글로 인정 받았다는 것이 마음 뿌듯했습니다.


제가 논문에서 주장하고 싶었던 글을 제언에 쓰고 읽어보니 단순했습니다. <양육태도와 양육기술에 대한 두 엄마의 다른 가치관의 충돌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조율의 필요성이 제기됨으로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토록 기나긴 인고의 시간 이후 얻어진 사회적 메세지가 이렇게 단순하다니.'


논문이 통과한 뒤라, 논문 초록에 쓰여있는 마지막 문장을 자랑스러워하며  제자신이 너무 뿌듯했었죠. 리스포유와 국회도서관에서 검색되는 저의 논문을 꾸준히 검색해보면서, 몇 번이나 리퍼럴되었는지 확인하는 그동안은 만족스러운 취미생활이었답니다. 


논문의 검색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교수나 논문을 쓰기 위해 근거가 필요한 사람들과 학생들의 검색량이 모두입니다. 내용이 사회과학이다보니, 커다란 이슈성도 없고 연구결과도 이미 예측된 결과를 뒷받침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중요한 양육태도와 양육기술을 할머니와 워킹맘인 딸이나 며느리가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길 바라며 정책적 제언도 했었습니다. 육아종합지원센터나 가족센터의 상담 혹은 교육프로그램을 더 많은 양육자가 알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부분을 확대실시되어야 한다고요.


그러나, 1년의 시간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논문은 사회적 영향력도 미미하고, 전문가들만 그내용을 찾아볼 뿐이었습니다. 논문을 처음 쓰고 학회에 발표했던 것은 내가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은 저만의 자기만족이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시는 쓰지 말아야지' 라는 마음과 '해야한다'는 마음의 갈등 속에서 목표를 위해 전진했던 것 같아요. 


세상에 수많은 언어중에 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지 않는 언어와 글쓰기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의 글쓰기는 목적이 있었고, 평가가 있었고,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제 스스로 질문하고 얻은 결과로 이제는 '쉽게 써보자'라고 생각을 바꾸려고 해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님의 마음 하나하나 전달하고, 워킹맘의 현실과 도전이 얼마나 처절하고 가슴아픈지 마음도 전하고 싶습니다. 


잘 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저의 미숙한 글솜씨가 아마도 마음전달하기가 쉽지는 않을거라고도 생각해요.

용기내어 이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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