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퇴근시간이 되어도 햇볕이 강합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식혀지지 않는 탁한 공기 때문에 퇴근길도 쉽지가 않습니다. 워라밸을 해야 할 텐데 막상 집에 가면 TV 앞에 앉아 멍 때리는 일이 잦아지곤 합니다. 죽어가는 시간을 살려보고자 퇴근을 조금 미뤘습니다. 밀린 일도 정리하고 책상 정리도 할 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 가기로 마음먹었지요.
'햇볕이 강하지 않으니 걷기도 좋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걸으려고 하니 마음은 벌써 소파가 그리워졌습니다.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말았지요. 머리카락 색이 회색보다 흰색이 더 많은 기사님이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기사님께서는 누나에게 줄 가지를 낮에 수확해서 가져다주려는 중에 손님을 만났다고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농사를 지으시나 봐요"
"요즘 같이 더울 때는 낮에 밭에 자주 가요"
"이렇게 덥고 햇볕도 강한데 낮에 밭에서 일을 하세요?"
"낮에 밭에 있는 가지나 고추 돌보면서 땀을 흘려야 저녁에 운전을 할 수 있어요"
"아... 두 가지 일을 하시네요"
요즘 더워서 에어컨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낮에는 땀에 흠뻑 젖도록 열심히 농산물을 가꾸시고 저녁부터 밤까지는 택시운전의 투잡을 하고 계신 거였습니다.
"밭농사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10년 되어가는데, 처음에는 잘 못해서 많이도 망쳤죠. 한 해 한 해 물어보고 배워가면서 했어요"
"아... 10년 동안 하셨군요"
"이젠 집에서 다 못 먹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주는데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신선해서 마트 가서 채소 못 산다고 달라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 무더위 속에 땀을 흠뻑 내면 오히려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몸속에 노폐물도 빠지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농약 없이도 채소를 잘 가꾸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했습니다. 10년 동안 배워가며 키웠을 세월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내년이면 이제 땅을 팔고 더 시골로 갈까 해요. 와이프는 여기에서 살겠지만 저는 은퇴하고 농사지으면서 살아야죠"
인생의 계획과 실천을 제대로 하고 계신 분을 만났어요. 10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을 초보농부였지만, 이제는 경험이 쌓여 완성된 결과물을 만드신 베테랑농부셨던 겁니다. 낮에는 취미생활 밤에는 본업을 하시는 제대로인 워라밸을 하신 분이셨어요. 휴식과 여기 시간을 적절히 활용해 노후준비도 하니 일석이조 이네요. 적절한 시기에 은퇴를 준비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키운 가지예요.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어요" 라며 하나는 어제 땄어야 했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커버렸다며 토실하게 큰 가지를 두 개를 주셨습니다. 마치 통통한 펭귄 같기도 한 가지 모양이 귀엽습니다.
펭귄 같은 가지
인생을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시는 기사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저의 노후와 노후의 워라밸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있지도 않고 기약도 없는 손주와의 약속을 해봅니다. 귀하고 귀한 손주? 손주들? 에게 '농약 없이 재배한 신선하고 영양가 많은 채소를 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