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사가 전해주는 남겨진 것들의 기록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읽었다. 「남겨진 것들의 기록」이라는 책인데, 유퀴즈에도 출연한 적이 있으신 작가님이 낸 책이었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변화시켜 주신 분이라 나도 모르게 손이 갔던 것 같았다.
옛날엔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이웃 간의 정이 따뜻했었다. 나만 해도 부모님이 아직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아 저녁밥을 해결할 수 없을 땐 이웃집에 가서 식사를 해결하고 곧바로 친구들과 놀이터로 달려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이웃들과 공유하고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웃 간 정보다는 나만의 공간을 더욱 중요시하고 사생활을 모르는 이와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그들로 하여금 좋지 않은 일이 있진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옛날의 이웃, 공동체의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고독사, 즉 절망사라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사회현상이 수면 위로 대두되고 있다. 물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한 고독사도 존재하겠지만 그것 또한 생활을 서로 알아봐 줄 수 있는 공동체의 부재가 기반으로 깔려있음을 시사한다. 거기다 본인의 심신을 홀로 신경 써야 하는 시대이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기에 그 문제는 더욱이 크게 다가오게 된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안타까운 사연을 유품정리사분께서 담담히 표현해 주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아들을 두고 이혼을 결심하게 된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고독사하게 된 내용이었다.
유품정리사께서 최선을 다해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고 작업을 이어 가시다가 집에 있는 대부분의 물품이 비닐에 싸여 포장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시던 와중 이웃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유를 듣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치매가 걸린 와중에도 아들이 곧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치매 걸린 어미는 곧 이사 가게 될 거라며 본인의 짐을 매일매일 비닐포장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치매가 걸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저하되었어도 그녀는 본인이 남겨두고 온 자식, 아들만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한 겹 두 겹 항상 본인의 짐을 포장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장성한 아들이 본인을 데리고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비닐포장으로 점철된 집에서 쓸쓸히 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서도 그녀는 아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이제 곧 아들이 오겠거니 하면서...
나도 한 때 고독사에 대한 내용을 심도 있게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로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유품정리사들의 작업과정을 살펴보기도 했고 이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다시 다짐하는 계기로 가지기도 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람이 죽으면 드라마나 영화처럼 다소곳이 누워서 깔끔한 상태로 발견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는 거다. 특히 누군가 본인을 보살피는 사람이나 가족, 동료 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급작스러운 죽음의 손길은 언제든지 어떠한 형태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욕실에서 미끄러져 그 자리에 고꾸라진 상태로 발견된다거나, 심근경색 같은 심정지가 갑자기 발생하여 현관이나 거실 한가운데 엎어진 형태로 발견되는 것인데, 문제는 사후경직이 지나고 나면 그때부턴 모든 생물의 생로병사처럼 인간의 몸도 말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온몸의 구멍에서 체액이 흘러나오고 온갖 구더기나 파리가 꼬이고 참을 수 없는 시취가 그 공간을 뒤덮기 시작한다.
나도 지금 본가를 떠나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데, 앞서 말한 사례들을 보면서 짐짓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돌봐주던 가족은 본가에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비상상황이 발생했으나 대처를 못한다면 나도 고독사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고독사는 누구에게나, 심지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런 모습으로 세상과 이별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에필로그에도 나온 것처럼 우리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에 대해선 굳이 심오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로 치부하고 저 멀리 던져버리곤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뉴스만 보아도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제 혹은 방금까지만 해도 나와 하하 호호 웃던 사람이 순식간에 이승과 저승을 건너버리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물론 그 대상은 나도 포함될 테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님은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며 유족들에게 마지막 모습이 담긴 공간을 최대한 정리된 상황을 보여주고자 하시지만, 항상 그분은 "오늘도 한 명의 인생을 지웠습니다."라는 말을 하신다. 그렇게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안타깝게도 자연스러운 현상도 있지만 본인이 선택하는 현상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작가님의 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질 뿐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를, 그리고 떠난 이의 이야기가 남은 사람에게 너무 아프게 오래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가님께서는 본인의 직업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이웃 간의 정을 통해 이웃을 보살펴주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져 말 그대로 자연사라는 단어만 이 세상에 남기를.
하루하루 똑같은 삶을 반복하며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가짐에 경고를 던져준 이 책을 읽으며, 아침에 눈을 뜸에 감사함을 느끼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도 같은 마음이 전달되기를.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기를.
모두가 평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