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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7. 2024

이 시기를 넘고 넘어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더위도 이제 한풀 꺾여간다.

후텁지근하던 한여름 밤의 찝찝함도 이제 퍽 잠잠해져 간다.

그렇게 이 시기를 넘고 넘어 또다시 시간은 흘러간다. 


23년의 겨울밤, 몇 분 뒤면 24년 새해가 다가옴에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고 그저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벌써 9개월 전이다. 벌써 24년은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올해를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 나는 무척이나 정신없이 지냈다. 새로운 부서와 업무를 맡고 나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체감하지 못한 채로 눈뜨면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고독한 회사원인 것이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도 가봤고, 행사를 진행하면서 티비로만 보던 연예인도 코 앞에서 보기도 했고 심지어 그들과 악수도 해봤다. 그러다 보니 벌써 9월이다. 

곧 가을이 찾아오겠지. 선선한 바람이 코 끝을 간지럽히고 짙푸른 녹색의 향연도 이제 다가오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 몸단장을 할 테다. 그렇게 이 시기를 넘고 넘어 또다시 시간은 흘러간다. 


난 9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외적으로는 눈 뜰 새도 없이 지냈지만, 무엇보다 내면 속의 평안함은 더더욱이 챙기지 못했다. 내면 속의 평안함에 무관심해지는 순간 나는 인간이 아닌 하나의 부속품으로 변해버렸다. 어느샌가 내 심신의 평화보다 내가 맡고 있는, 내가 해야 하는 업무로 중요도가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어 간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올해는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음속의 사시나무가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댄다. 앙상한 뼈다귀 같은 나뭇가지만을 드러낸 채로 이리 쓸렸다 저리 쓸렸다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나무의 뿌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무 그 자체인 나조차도...


집으로 돌아와 기나긴 한숨과 함께 고요한 침대에 드러누우면 그 순간 이 방안에는 나와 나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와 나는 서로 다른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와 나는 서로 어색하기만 하다. 피곤에 절여진 나는 하루종일 마음속에 숨어 살던 나와 반갑게 인사할 여건은 되지 않는 듯하다. 그저 한탄에 가까운 나지막한 비명을 함께한 기지개를 켜고 그대로 내일로 향한 잠자리로 빠져든다. 


나는 나를 챙기지 못했다. 나는 나를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나를 도외시한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 편향은 짙어진다. '이러면 안되지 안되지' 하다가도 내일 무엇을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 또다시 나는 나를 도외시한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어떡하든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렇게 또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방 안에 홀로 남겨진 나를 마주하고는 어마어마한 우울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 광경은 두 눈 뜨고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 내심 인정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하지만 말똥말똥 닫히지 않는 눈꺼풀이 괜스레 미워지기까지 한다. 곰곰이 내가 마주한 고요에 대해 심오한 고뇌를 하며 찬찬히 음미한다. 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들이 점차 없어져가고 있다는, 이제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결혼이라는 관문을 넘어 어느샌가 엄마,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이 현실 속에 나는 오로지 꼿꼿이 혼자였다. 


어느 책을 보았다. 우울이라는 것을 단순한 감기처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가 필요하다고. 감기 걸렸다고 하면 무덤덤하니 병원 가봤어? 약은 먹어봤어?처럼 가벼운 방법을 제시하듯이 우울이라는 현상에도 그런 가벼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굳이 따지고 보자면 우울하다고 느끼는 나는 실제로는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독과 우울을 구별하지 못해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를 구별해야 하는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 난제인 것이다. 어느샌가 고독이 익숙해지는 타이밍이 있었다. 사람들과 만나며 웃고 떠들며 하는 일에 에너지 낭비로 생각하고 굳이 돈과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순간 고독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고독은 당신의 친구 우울과 함께 손잡고 이 방 벽을 타고 곳곳을 누비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이 둘을 갈라낼 수 없는 나로서는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함께 있으려면 나부터가 이들로부터 익숙해져야겠지. 그래, 그러려니 해야지...

난 또다시 고독과 우울과 외로움과 피곤과 한숨과 염세와 지침과 짜증과 분노와 한탄과 불평불만과 한 데 모여있다. 그렇게 이 시기를 넘고 넘어 시간은 흘러간다.


아, 잠에 들 시간이다. 


나의 친구들아, 이 새벽까지만 나와 놀고 낮이 되면 저 마음 깊숙이 들어가주라.

그러고는 새벽에 다시 나와주라. 


그렇게 그렇게 이 시기를 넘고 넘어 

또다시 나타나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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