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혈당 쇼크
운동을 마치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거실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 개운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날, 운동할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컨디션이 난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헬스장에 온 김에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까워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상회하는 운동을 하고 만다.
계속 속이 미슥거리고 식은땀을 흘러댔다.
운전 중에 차에 두었던 아쿠아향 방향제가 더 속을 뒤집어 놓는다.
창문을 열어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주차하고 집에 올라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요깃거리를 사 왔지만 뭔가 먹고 싶지 않았다.
아까부터 속이 미슥거려서 그런지 정작 까놓고는 먹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때 난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내가 무리하게 운동을 해서 입맛이 돌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인슐린 주사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혈당이 높다고 판단해 혈당을 낮추면 배가 고파지겠지라는 최악 중에 최악의 수를
그렇게 내 몸에 투여하고 말았다.
운동을 한 직후라 혈당은 자연적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그런 몸에다가 인슐린을 투여해 버리다니.
이건 마치 가뜩이나 절벽으로 내딛고 있는 내 몸을 그냥 던져버린 꼴이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몸은 미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 온몸을 적시기 시작했고
만취한 것처럼 몸이 제어불능 상태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걷는 것조차 되지 않고, 계속 쓰러졌다.
그러다 기억을 잃었다.
지금은 몇 시인가..?
탁상 위의 Led시계가 새벽 2시 반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까 그 상태 그대로였다.
몸이 죽지 않기 위해 강제로 뇌를 깨운 것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 기었다. 기어서 부엌으로 가 설탕이 담긴 통을 열어젖히려 했다.
손바닥에 흥건한 땀 때문에 설탕통이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의식은 또 희미해져 갔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하이 빅스비를 불러 시간이 몇 시냐고 물으니, 새벽 4시 반이라고 한다.
난 입고 있던 옷에 최대한 땀을 닦아내고 겨우겨우 설탕통을 열었다.
허겁지겁 설탕을 입에 욱여넣고, 어서 빨리 몸에 흡수되기를 빌고 빌었다.
여기서 내가 포기한다면 2024년에 삶을 끝내버릴 수도 있음에 억지로 억지로 입에 설탕이 녹아들기를 빌었다.
주마등을 보았다.
난 이때 잠정적으로는 죽은 것이다.
그렇게 죽음에 관한 생각은 많이 해왔지만 이렇게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내가 이제껏 해왔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고 인생에서 가장 처음 기억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 이제 끝나겠구나...
시간이 지나자, 설탕이 혈액 속에 녹아들며 혈당을 올린다.
점점 의식이 명료해졌다. 그리고 온몸에 흘렀던 식은땀이 그치기 시작했다.
눈을 떴다. 다행히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고 빅스비를 불러 시간이 몇 시냐고 물어봤다.
오전 7시 반.
단 6시간 정도 사이에 난 죽음 코앞까지 갔다 왔다.
저혈당 쇼크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겪어와서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산산이 부수었다.
만일 여러분 근처에 당뇨를 앓고 있는 이가 있다면 어느 순간 인지능력이 불명확해지고, 언어기능이 어눌해지며, 만취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저혈당 쇼크로 빠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럴 땐 정말 단순한 예/아니오 같은 대답만 가능하기 때문에 저혈당인지만 물어보고
만약 맞다면, 근처에 편의점에서 초코바와 콜라 등을 챙겨 와 조치하면 된다.
불행히도 의식이 없어진 상황이라면 바로 119를 호출하여 당뇨환자라는 점을 알리고 추후 조치를 하면 된다. 쇼크는 저혈당도 있지만 고혈당도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119 구급대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여하튼, 올해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바로 며칠 전에 일어났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느낌은 반복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