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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Jul 20. 2023

왜 하필 나야?

그래 나 일 수도 있지

 가만 생각해 보면,

'왜 하필 나야?'라는 말만큼 이기적인 말이 없다.


누군가는 겪는 일을 '왜 꼭 나는 아니어야 해?'라는 반문을 해보자면, 지금껏 '왜 하필 나야?'인 일을 뺀 나머지는 모조리 다 무사했던 순간, 감사한 날들이었단 걸 왜 몰랐을까. 그동안의 수많은 안녕들이 당연한 게 아니었는데.


이만하면 되었지.





못된 인간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 지금의 나는 그 모진 시간을 견딘 게 기특한 걸까, 합리화하며 살아낸 게 비겁하거나 한심한 걸까, 혹은 그만큼 힘들지 않았던 걸까.


오죽하면 그랬을까. 오죽하면.


세상에 남편 빼고는 다 이해가 돼버리는 이해봇이 된 나는, 세상만사 어떤 일도 나에게 일어나지 마란 법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고작 37살에 '왜 하필 나야'가 '그래 나일수도 있지'가 될 수 있구나. 이로 인해 앞으로 살 날은 조금 가벼워질 수 있으려나. 내가 만약 남편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이해봇이 된다면 참 살기 편해지겠다. 정말 그땐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이 없을 테니까.


'그럼 나는 누가 이해해 주나'라는 멍청한 질문은 구겨 넣는다.

나도 내가 이해해야지.

오죽하면 그랬을까. 오죽하면.

정말 너도 오죽하면 그랬겠니.


그렇다. 나는 간도 콩알만 한 데다 소심한데 성질은 더러워서 억울한 꼴, 부당한 꼴을 보면 분에 못 이겨  씩씩대면서도 사는데 별도움 안 되는 양심과 도덕성은 다소 높아서 거짓말은 죽어도 못하고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아부 혹은 알랑방구 같은 거 뀌면서 가식 떠는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하며 묻지도 않은 일을 감추고 있으려면 괜스레 혼자 찔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의 소유자다. 참 가지가지 다하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나쁜 짓은 안 하고 살았다. 아니 못하고 살았다. 남에게 피해 주고 살아본 일 없고, 먹고 살아본 일도 없다. 남들에겐 내 오장육부 다 뒤집혀도 티 내지 못하고 속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내색 않는 소위말하는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그토록 당하고도 당신이 불쌍해지는 마음 약한 사람이니까.


그런 내가 오죽하면 당신이 피눈물 나기를 기도할까.


수많은 억울함과 누명을 쓰고 온갖 욕설을 들어가며 나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를 자꾸 생각했다.


론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죄 없이도 죗값을 치르 듯,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당하는 사고처럼.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나일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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