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이면지에 색칠해 온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며 '아빠'라고 했다.
"아빠 왜 화났어? 뭘 못 참겠대?"
"엄마 때문에 화났어"
"엄마가 뭘 잘못해서 머리에 불까지 붙은 거야?"
"엄마는 잘못이 없는데 엄마 때문에 화가 났어"
아...
다 기억하고 있던 거구나.
순간 뇌가 정지되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그냥 웃어넘겼다.
잊히진 않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 기억들.
그래 그랬었지.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날들. 넌 그걸 고스란히 그러한 형상으로 기억하고 있었구나. 아빠 머리에 얹어진 불덩이가 이유도 없이 잘못 없는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는 걸.
우리 세 모녀가 집을 나온 후 다섯 살은 새 어린이집에 입소하고 딱 일주일째, 예전에는 화가 나있는 아빠모습이라도 가족들 그림에 빼놓지 않고 그려오더니 최근에 그려온 그림에는 엄마 혹은 언니 혹은 우리 셋이 함께 뿐이었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아빠와 인사도 없이 집을 떠나 지금껏 아빠 없이 우리끼리 왜 외딴곳에 와있는지 아빠는 어디 있는지 한 번도묻지 않는 다섯 살에게 굳이 아빠는 왜 안 그렸는지 묻기가 두려웠다.
혹여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대답이 나올까 봐.내가 너의 말에 마땅히 둘러댈 말이 생각 안 날까 봐.
내가슴 후벼 파질까 걱정이 된 걸까. 내가 네 가슴을 후벼 파게 될까 봐 걱정이 된 걸까.
당연하게 '아직 어리니까'라는 이유로 너에게는 아무런 예고도 설명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싸서 낯선 곳으로 이사를왔다. 말 그대로 아직 어리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예민하진 않은 아이라 딱히 궁금해하거나 의문을 갖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늘 집에 없던 아빠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모양새의 집안 꼴이라 더욱 그러리라 단정 지었다.
그렇게 소리소문 없이 집을 떠나와서도평소처럼"그때 아빠랑 갔었잖아""너네 아빠그거 좋아하시잖아" "아빠가 사주신 거지" 등 아무렇지않게 아이들에게 아빠를 언급했다. 전혀 아빠 얘기를 쉬쉬할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고 모든 게 자연스럽길바랐다. 집을 나오는 과정은 전혀 자연스럽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내가 무슨 얘길 해도 아빠는 어디 있는지 아빠는 왜 안 오는지한 번도 묻지 않는다섯 살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왜 아빠한테 전화 한 통 걸어주란 말이 없는지,여전히묻질 못한다.
우리 집 다섯 살은 아빠가 행패를 부리는 시기 한동안은 아빠가 화를 낸얘기, 집에 안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 엄마한테 돈주라는 소리만 한다는 얘기, 무섭다는 얘길 시도 때도 없이 하다가도, 또 가끔은 혼자 신이 나서 애들에게 간 쓸개 다 빼줄 것 같이 아양을 떠는 날엔 우리 다섯 살도 긴장이 풀려 한껏 들떠 몇 안 되는 좋았던 이야기만 되풀이하곤 했다.
이사 후엔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도, 긍정적인 얘기도 없길래 존재 자체를 잊은 건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그려 온 그림을 보고 얘기를 하다가 그림 속에 엄마 그림에도, 언니 그림에도 '엄마, 언니'라고 선생님께서 써주셨는데 아빠 그림에는 아빠라고 안 적혀있길래 왜 아빠는 써달라고 안 했는지 물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만 절레절레하던 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지금도 그모습이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오늘 밤, 잠이 안 온다며 어릴 때 사진을 보여달라기에 나란히 누워 함께 사진첩을 뒤지다 세돌 생일 때 우스꽝스럽게 노래하는 아빠가 등장하자 넌 깔깔 웃었다. 그리고 동영상 속에"아빠딸"이라는단어를 쓰는 아빠를 보고 내게 물었다. "근데 왜 난 엄마딸인데 아빠딸이라고 하지?" 라며 정말 몰라서 묻는 듯 진지하게.
"엄마딸도 되고 아빠딸도 되는 거야 둘 다 맞아"라는 나의 말에 너는 또 어색한 웃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 가장 최근에 갔던 마지막 가족여행 사진을 보게 됐다.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네 식구의 여행이었다. 아빠와의 여행이 처음인 데다 아빠가 술 한잔하고 텐션이 업돼 춤을 추던 모습이 다섯 살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이런 편안한 모습을 본 건 드문 일이라 안심 플러스 흥분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덩달아 함께 막춤을 추고 온 그 이후로 아빠만 보면 춤을 추자 했고 거의 몇 달은 아빠를 기다리며 "아빠랑 춤추고 싶어 아빠 그때 신나서 춤췄잖아"라는 말을 정말 매일같이 했다. 참내 그게 뭐라고. 난 별오만걸 매일같이 해줘도그때뿐인걸. 저인간은 살다 처음 여행가 살다 처음 같이 춤한번 췄다고 이토록 입이닳도록 찾아 댈 일인가 싶어 '너는 참 뭐든 쉽구나' 싶다가 '이렇게 흔하고 쉬운 일상이 우리 애들에겐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싶어 내 새끼들이 안쓰러워져마음이 시렸다.
난 그 당시 신나 하던 널 남기고 싶어 영상을 찍으면서도 그 인간이 캠핑장에서 술 먹고 시끄럽게 하는 게 못마땅하고 꼴 보기 싫어 그마저도 투덜거리며 그 사람 얼굴은 거의 잘라내다시피 하여 촬영을 했었다. 오늘 나의 다섯 살이 그날의 동영상을 보며 또 그날처럼 밝게 웃었다. 너와 함께 하며 행복해하던 아빠의 모습도 좀 더 선명하게 남겨줄걸 후회가 됐다. 그리고 네가 정신없이 웃고 있는 틈을 타 은근슬쩍 아빠 보고 싶냐는 질문을 훅 던졌다.
그리고 의외의 대답.
"응 근데 어차피 이제 못 보잖아."
"왜? 왜 못 봐?"
"우리 이제 이사 와서 못 보잖아"
오 마이갓.
이사 가면 다니던 어린이집 친구들과 헤어지 듯, 동네 이웃들과 헤어지 듯, 아빠도 그냥 우리가 이사 와서 못 보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던 건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아니야. 지금은 너무 멀고 아빠가 바빠서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어."라고 말해줬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별 반응이 없는 그 반응조차 어떤 의미인지 신경이 쓰였다.
집을 나온 지 3주가 다 되어가는데 나오기 전에도 3주 정도는 아이들이 아빠를 보지 못했다.
현재 두 달 가까이 못 본 셈이다.
열 살은 모든 사태파악을 한 상태라 굳이 의문을 갖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빠가 보고 싶진 않은지 내가 먼저 묻는다. 사실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고맙다 정말. 당신의 빈자리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허전하지 않도록 10년을 한결같이 우리 곁에 없어줬던 게.
아빠가 보고 싶기는커녕 생각도 안 난다는 아이를 보니 그나마 내 자식의 마음은 불행 중 다행인 것 같았지만 안 그래도 불쌍했던 당신 인생은 앞으로 더 불쌍해질 것만 같아 불쌍하다 못해 가슴이 먹먹해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