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과천, 서울,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네 명의 할머니와 아줌마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줌에서 만나 하브루타 공부를 하고 있다. 만나서 수다만 떠는 것보다 의미 있고 뭔가 성장하는 느낌도 들어서 좋다. 그리고 모임을 지속할 수 있기도 하다. 만나면 두 시간 정도 하는데 앞에 한 시간은 일상적인 근황을 이야기하고 한 시간은 각자 돌아가며 주제를 정해서 하브루타 질문과 토론을 하는 모임이다. 같은 직장에서 만나서 지금은 다 같이 은퇴한 상황이고 환경도 비슷하고 젊었을 때부터 함께 한 시간이 많다 보니 서로 잘 알고 관심 분야나 공통의 화제도 많다. 이 중에 셋은 손주가 있는 할머니이고 늦게 결혼한 나는 아직 아이들이 결혼 전이다.
그중에 A는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특히 교육열이 강하고 아이들 우선이었는데 지금도 딸의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서울에서 초등교사를 하는 딸의 손자를 돌보기 위해서 화성에 있는 집을 두고 딸 옆에 집을 얻어서 손자를 돌봐주고 있다. 자기 일도 하고 공부와 운동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어느 날 A가 하브루타 토론 중에 ‘샘들은 사랑을 택하겠어요? 자유를 택하겠어요?’라고 물었다. 손자를 돌보지 않는다면 딸이나 손자를 볼일도 별로 없고 무슨 날이나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좀 외로울 것이고, 아이를 돌보니 시간에 메이고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딸의 아이를 안 봐준다고 하면 딸이 너무 서운해할 것이다. 게다가 작년에 초등교사 문제로 알려진 바처럼 요즘 교사들 학교생활도 힘든데 육아까지 스트레스받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의 마음이다. 하지만 또 딸과의 동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아니까 그런 말 뒤에 표현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느껴진다.
외국에 사는 B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건강하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등산가셨다가 갑자기 귀가 안 들린다고 하시더니 치매기가 와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아들은 공부한다고 학교 근처로 독립했는데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엄마를 놀라게 하더니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엄마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주말이면 온 식구가 와서 이틀씩 집에 있다가 가면 밥해 먹여야지 아이 봐야지 바쁘고 힘들지만, 손주 귀여운 재롱에 또 즐겁단다. 이제 둘째까지 가져서 아이를 낳으면 돌봐주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한편 C는 아들이 일찍 결혼해서 손녀가 초등생인데 거의 아이를 봐준 적이 없다. 자유롭게 자기 할 것 다 하면서 즐기며 산다. 미술관도 자주 가고 가까운 산이나 둘레길 도보 여행도 하고. 그런데 만약 딸이 시집가서 아이를 낳으면 아마도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엄마가 되는 일 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엄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가 낳은 아이를 저절로 우러나는 사랑으로 돌보는 일이라면 할머니가 된다는 건 며느리 사위라는 이름으로 남의 집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관습적인 사랑을 하고, 게다가 그 아이를 돌보는 건 내 아이를 키울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희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자유를 빼앗기는 느낌이 들면서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외에도 어른으로 해야 할 역할과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니어서 미리 걱정하거나 하진 않지만, 은퇴 후 노년의 삶에 겪어야 하는, 자식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고민이 되는 일이다. 사랑을 택하자니 내 생활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자유를 택하자니 자식한테 죄진 듯 미안하고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한 것이 현실이다. 다가올 미래에 사랑과 자유를 다 가질 묘책은 없을까? 좋은 의견들을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