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보니 너무 심하네
어쩌면 재능이란 영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로 돈을 못 벌 것 같으면 해야 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 라도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는 꾸준함에 깃드는지도 모른다. 뒷골목에서 헤매고만 있는 것 같아 비참해지는 순간이 자주 오겠지만 울며불며하다 보면 생각 못한 순간 언저리에라도 도착할지 모른다. 그러다 또 언젠가는, 그 대단한 재능의 비결이 뭐냐고 물어오는 후배가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결국 애매한 나를 견디는 법은, 엉엉 통곡할지언정 일단 목적지 근처라도 가서 맴도는 데 있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정문정. 문학동네
위의 글은 2000년에 혹평을 들었던 <플란다스의 개>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일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봉 감독은 당시 "난 재능이 없나 봐"하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애매한 실력 때문에 내 직업을 말하기 힘들어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렇다.
내가 유명하지 못한 이유는 그만한 실력이나 재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고 물었을 때 스스로가 "아나운서입니다"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남들이 직업을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쯤은 되어야 직업란에 당당하게 내 직업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늘 맴돌았다.
그런 솔직한 나의 생각들을 적어내리기엔 인스타그램도, 블로그도 부끄러웠다.
무명 아나운서일지라도 내 이름을 걸고 잔뜩 꾸민 얼굴의 셀카, 촬영장, 행사장 화려한 사진들이 난무한 플랫폼에서 지질하고 궁상맞은 뒷모습을 적기가 부끄러웠다.
다들 화려하고 잘 나가고 스스로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말하는 공간에서
"솔직히 말하면 안 유명한 나 자신이 불안합니다.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거든요."
라고 말하면 진짜 일이 끊길까 봐 쓸 수 없었다.
잘한다고 일만 줘보라고 잘할 수 있다고 외쳐야만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정문정 작가는 학창 시절 글쓰기로 자주 칭찬을 받았고 전업 작가를 꿈꿔지만 그럴 만한 재능은 없는 걸 일찍이 알았다고 했다.
참나 참나,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기준이 얼마나 높으신 겐가 조금 놀랐다.
백일장에 나갔지만 항상 상을 탔지만 최우수상을 탄 기억은 없고 우수상 장려상 등 그 언저리의 상을 탔다고 했다. 차라리 상을 못 받으면 깔끔하게 이 길을 포기할 테지만 애매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들기 쉽다고 했다.
나도 조금은 그랬던 거 같다.
학교를 다니면서 방송반에 들어가서 행사 진행도 했고
말하기 대회 나가서 상도 받았다.
무대에 서서 말하는 걸 좋아했지만 뭐랄까 끼는 없었다.
판을 깔아 주지 않으면 나설 줄도 모르는 내향외향인이었다.
남을 웃기는 재능도 부족했다. 아나운서가 남을 웃기는 재능이 왜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깔깔깔 웃기는 재능이라기 보단 감칠맛 나는 멘트를 칠 줄 아는 재치!
난 그게 없어 보였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다닐 때였다. 반에 예쁜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가 카메라 앞에 서서 뉴스 진행하는 걸 자리에서 모니터링하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옆에 앉은 친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와, 00 언니 카메라 빨 되게 잘 받는다. 바로 방송해도 될 것 같아 '우리'랑은 차원이 다르다 그렇지?"
그랬다. 나는 같은 반 친구가 보기에도 아직 부족한 '우리'에 포함될 만큼 도드라지는 외모도 아니었다.
또 어느 날은 수업을 듣는데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받은 친구가 라디오 원고를 읽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한 언니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쟤 목소리 진짜 좋다. '우리'는 어쩌냐"
역시 또 달팽이관에 와닿는 그 단어 '우리'
그랬다. 나는 목소리 걱정을 함께 해야 하는 무리에 속했다.
예전에 백지연 앵커가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오픈한 적이 있었다.
나 때는 백지연 앵커가 롤모델이자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 반에 들어가려면 카메라테스트까지 봐야 했고, 수업료도 아주 비쌌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의 등골브레이커가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강렬하게 그곳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고 싶었다.
한때 나의 롤모델이었던 사람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데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께 읍소하고 사정하여 '한 달 수업 수강권'을 따냈다.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간 반이었는데 수업을 들을 때마다 백지연 앵커의 카리스마에 기가 죽어서 벌벌 떨면서 원고 리딩을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올아(본명아님),너 그런 식으로 하면 절대 합격 못 해"
지하철 타고 오면서 엉엉 울었다.
아나운서 하나 해보겠다고 홀로 서울로 상경했는데 나는 정말 재능이 없나 보다.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서 어떻게 하나.
그렇지만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 일이 해보고 싶었으니까. 그 많은 아나운서 지망생 중에 한 학원 심지어 한 반에서도 튀지 못하는 실력이었지만 해보고 싶었다.
어찌어찌 꾸역꾸역의 노력과 운이 겹쳐져서 지역 3사 방송국에 합격했고 아나운서 타이틀도 달았다.
꽃길이 펼쳐질 것 같았다.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메인 3사는 계속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지길 반복하고 내 나이 앞자리가 바뀌던 해 시험 보는 걸 포기했다.
결국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채널과 행사를 통해서 방송을 하고 있긴 하다.
그래도 3사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건 여전히 나한테는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마음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한 대로 애매한 나를 견디는 법은 엉엉 통곡할지언정 일단 목적지 근처라도 가서 맴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짜 재능이라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흔들려가며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면 나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재능의 영역이라는 것이 한 분야만 있는건 아니니까.
얼마 전에 후배 한 명이 이런 나도 선배라고 찾아왔다.
회사를 그만 두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푸념과 함께.
좋아하는 마음을 붙잡고 끌고 나가는 것도 어찌 보면 재능이라고. 내가 열심히 한번 극복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그 일을 해볼 수는 있다고. 세상에는 다양한 방향이나 기회가 있어서 한 번쯤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그렇게 적당히 하다 보면 계속해도 괜찮은지 아니면 영 아닌지 답이 나올 것이라고. 그건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그 숱한 노력과 눈물, 절망, 희열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꽤나 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그녀에게 한 말은 나 자신에게 해준 말과 같았다.
그러니까 애매한 재능을 가진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요즘 일거리 없다고 힘들어하지 말고 좋아하는 이 마음을 이끄는 재능으로 다시 열심히 일어나 보자.
하다보면 유명해질지 누가 알아?